올해 초 발표된 국제임금 비교 보고서 하나가 언론을 탔다. 한국 상용근로자의 연간 임금이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6만 5,267달러로, 일본(5만 2,782달러)보다 23.7% 높다는 내용이었다. 대만(5만 3,605달러)과 비교해도 16.2% 위. 기사 제목들은 예상대로 “고임금 경보”를 울렸고,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 상승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런데 이 23.7%라는 숫자를 한 겹만 벗기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이 수치는 고임금 위기의 증거가 아니라, 30년 임금정체에 빠진 경제를 기준선으로 삼고 연 255시간의 초과 노동을 은폐한 프레이밍의 산물이다.
한 줄 요약: “한국 임금이 일본보다 23.7% 높다”는 연간 총액 비교는 노동시간 차이를 반영하면 7%로 급감하며, 진짜 질문은 ‘왜 한국이 높은가’가 아니라 ‘왜 일본이 30년째 제자리인가’여야 한다.
연 임금 23.7%, 시간당 임금 6.8% — 숫자가 바뀌는 순간
보고서가 제시한 6만 5,267달러와 5만 2,782달러는 연간 총 임금이다. 그런데 한국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872시간(2023년 OECD 보고 기준)이고, 일본은 1,617시간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매년 255시간을 더 일한다. 근무일 기준으로 치면 약 32일, 한 달 반에 가까운 시간이 추가로 투입된다.
$34.87/h
한국 시간당 임금 (연 $65,267 ÷ 1,872h)
경총 임금 데이터 + OECD 노동시간 (2024)
$32.64/h
일본 시간당 임금 (연 $52,782 ÷ 1,617h)
경총 임금 데이터 + OECD 노동시간 (2024)
6.8%
시간당 임금 격차 — 23.7%에서 급감
직접 산출
255시간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연간 더 일하는 시간
OECD 연간근로시간 (2023)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한국 34.87달러, 일본 32.64달러. 격차는 6.8%로 줄어든다. 23.7%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연간 총액 비교에서 “위기”로 보이던 것이, 실제로는 한국 노동자가 일본보다 15.8% 더 오래 일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차이였을 뿐이다. 보고서는 이 보정을 생략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독자는 “한국 임금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잃어버린 30년’을 기준선으로 삼는다는 것
이 보고서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비교 대상 자체에 있다. 일본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30년간 실질 임금이 정체된 나라다. 2023년 기준 일본의 평균 연봉 617만 엔(약 4만 1,363달러)은 1990년대 중반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건 “안정”이 아니라 경제적 실패에 가깝다. 같은 기간 미국·독일·호주의 실질 임금은 꾸준히 올랐다.
2026년 춘투(春闘)에서 일본 기업들은 5.26%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33년 만의 최고치라는 뉴스가 쏟아졌다. 그런데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임금은 2025년에도 -1.3%를 기록했다. 4년 연속 마이너스다. 명목으로 올려도 물가를 못 쫓아가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주의 — 기준선 함정 키가 170cm인 사람이 160cm인 사람보다 6% 크다. 하지만 160cm인 사람이 성장 장애를 겪고 있다면, “170cm는 과도하게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30년 임금정체를 “정상 벤치마크”로 전제하는 순간, 한국의 정상적 임금 성장도 “과잉”으로 보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교 프레임의 가장 아쉬운 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왜 한국이 높은가”가 아니라 “왜 일본이 30년째 제자리인가”를 물어야 한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임금 억제 — 비정규직 확대, 기업의 내부유보 급증, 소비 위축의 악순환 — 는 한국이 피해야 할 시나리오이지, 추종해야 할 모델이 아니다.
시간당 생산성이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
보고서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임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일본보다 현저히 낮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1.1/h
한국 시간당 노동생산성 (2023)
한국생산성본부 / OECD (2023)
$51.0/h
일본 시간당 노동생산성 (2023)
한국생산성본부 / OECD (2023)
100.1%
한국 대비 일본 생산성 비율 — 사실상 동일
한국생산성본부 국제비교 (2023)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 일본은 51.0달러.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0.1달러 차이다.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 임금이 일본보다 23.7% 높은데 생산성은 비슷하다”는 프레이밍이 가능해 보이지만, 앞서 확인했듯 시간당 임금 격차는 6.8%다. 시간당 생산성이 같고, 시간당 임금 차이가 6.8%라면, 이건 “생산성 없는 고임금”이 아니라 생산성에 거의 비례하는 임금이다.
솔직히, 데이터를 이렇게 나란히 놓으면 보고서의 “지속 불가능” 경고가 어디에서 근거를 찾는지 의아해진다. 한국이 일본보다 연간 총액이 높은 건 더 오래 일하기 때문이고, 시간당 받는 돈은 시간당 생산하는 가치와 거의 맞물려 있다. 문제는 ‘과잉 임금’이 아니라 ‘과잉 노동’에 가깝다.
직무급 전환이라는 처방전, 그리고 법적 현실
보고서는 대안으로 “연공급 대신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전환”을 제시한다. 이 처방은 사용자 단체가 최소 10년 이상 반복해온 것이다. 논리 자체는 간단하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급은 고령화와 함께 인건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밀어 올리니, 같은 직무를 하면 같은 급여를 받는 직무급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처방은 한국 노동법의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는 기존 임금체계를 불이익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요구한다(근로기준법 제94조).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의 전환은 거의 예외 없이 불이익 변경으로 판단된다. 고연차 근로자의 급여가 깎이기 때문이다.
사례 — 공공기관 직무급 시범 도입 정부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직무급 전환을 추진해왔으나,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노조 동의를 얻지 못해 시범 적용에 머물고 있다. 민간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부분 조정을 시도했지만, 기본급 체계의 근본적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다.
“직무급으로 전환하면 해결된다”는 결론은, 왜 전환이 안 되는지에 대한 분석 없이는 구호에 그친다. 이건 보고서가 일관되게 회피하는 지점이다. 임금체계 전환의 실제 장벽 — 노조 동의 요건, 불이익 변경 법리, 직무 평가 인프라의 부재 — 을 짚지 않고 “전환이 필요하다”만 반복하는 건, 진단 없이 처방전만 내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고서 발표 타이밍이 말해주는 것
이 보고서는 2026년 1월에 발표되었다. 한국의 최저임금 심의는 매년 6~8월에 집중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공익위원이 다음 해 최저임금을 두고 협상하는 시기다. 사용자 단체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한국 임금이 국제적으로 높다”는 데이터를 집중 배포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5월에는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을 주장하는 보고서가, 6월에는 “숙박·음식점업이 최저임금을 감당 못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걸 음모론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노동계도 같은 시기에 자기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내놓는다. 다만, 독자가 인식해야 할 건 보고서가 순수한 학술적 분석이 아니라 정책 로비의 도구라는 점이다. 23.7%라는 숫자가 “객관적 사실”로 유통되지만, 그 숫자를 어떻게 산출하고 어떤 맥락을 생략했는지는 발표 주체의 이해관계와 분리할 수 없다.
이건 좀 냉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매년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달리 읽기가 어렵다. 1월에 “임금이 높다”는 보고서 → 6월에 “최저임금 동결 또는 인하” 주장 → 8월 결정. 데이터의 내용만이 아니라 시점까지 전략적으로 설계된다.
대만 비교가 감추는 또 다른 층위
보고서는 대만과의 비교(한국 16.2% 높음)도 함께 제시한다. 대만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비회원국이라 직접 비교가 어렵지만, 대만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연 2,000시간 안팎으로 한국보다도 길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주 40시간 법정 노동시간이 2016년에야 시행되었고,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장시간 노동 관행이 남아 있다.
한국 6만 2,305달러를 1,872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33.3달러. 대만 5만 3,605달러를 2,000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26.8달러. 시간당 격차는 약 24%로, 이 경우는 연간 격차(16.2%)보다 오히려 벌어진다. 대만의 긴 노동시간이 시간당 임금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일본과 대만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단순 연간 비교의 한계를 드러낸다.
23.7%
한-일 연간 임금 격차
경총 보고서 (2026.01)
6.8%
한-일 시간당 임금 격차 (↓72%)
직접 산출 (임금 ÷ OECD 노동시간)
16.2%
한-대만 연간 임금 격차
경총 보고서 (2026.01)
24.3%
한-대만 시간당 임금 격차 (↑50%)
직접 산출 (임금 ÷ 대만 노동부 노동시간)
비교 대상에 따라 시간 보정이 격차를 줄이기도, 늘리기도 한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연간 총액 비교가 얼마나 불완전한 도구인지를 보여준다. 어느 한쪽 결과만 취사선택해서 정책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진짜 위험 신호는 어디에 있나
이 글이 “한국 임금은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에는 보고서가 정작 짚지 않은 더 실질적인 문제들이 있다.
첫째,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다. 대기업 초봉이 일본 대비 41.3% 높다는 데이터가 있지만, 이건 대기업 한정 이야기다. 한국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에 머문다. 전체 평균이 높아 보이는 건 상위 기업의 고임금이 견인한 결과이지, 한국 노동자 전반의 현실이 아니다.
둘째, 성별 임금 격차. 2023년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3%로 OECD 1위다. 2위 일본(22%)과도 7%p 이상 벌어진다. “한국 임금이 높다”는 진술은 누구의 임금이 높은지를 말하지 않는다.
셋째, 노동시간 자체. OECD 38개국 중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 6~7위다.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이후에도 이 순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연간 총 임금이 높아 보이는 구조 자체가 장시간 노동의 산물이라면, “임금을 낮춰야 한다”가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의제가 되어야 한다.
맥락 — 일본이 지금 하는 것 일본 정부는 2024년부터 물류·건설·의료 분야에 시간외노동 상한 규제를 확대 적용하면서, 동시에 기업들에 임금 인상을 사실상 강제하는 “관제 춘투”를 운영하고 있다. 30년 임금정체가 소비 위축 → 디플레이션 고착으로 이어졌다는 반성 위에서다. 한국이 참조해야 할 건 일본의 ‘낮은 임금’이 아니라 일본이 그 낮은 임금을 실패로 규정하고 탈출하려는 과정이다.
숫자 하나에 정책을 걸 수 없는 이유
23.7%는 사실이다. PPP 환율로 환산한 한국 상용근로자의 연간 임금이 일본보다 23.7% 높은 건 맞다. 하지만 이 숫자 하나로 “한국 임금이 과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 한국인이 연 255시간을 더 일한다는 것, 시간당 생산성은 양국이 사실상 같다는 것, 비교 대상인 일본이 OECD에서 유례없는 30년 임금정체를 겪고 있다는 것.
국제 임금 비교는 필요하다. 다만 그 비교가 정책 결론으로 직행하려면, 노동시간·생산성·비교 대상의 맥락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숫자 하나만 떼어서 “위기”를 선언하는 보고서는 정보가 아니라 수사(rhetoric)에 가깝다. 핵심이다 — 한국 노동시장의 실제 과제는 “임금이 너무 높다”가 아니라, 긴 노동시간, 기업 규모별 임금 절벽, 성별 격차, 그리고 연공급과 직무급 사이에서 법적·현실적 경로를 찾지 못한 임금체계에 있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임금 비교 보고서의 맥락 점검. 경영진이 “우리 임금이 국제적으로 높다”는 보고서를 인용할 때, 시간당 보정 데이터를 함께 제시하라. 연간 총액 비교만으로 임금 정책 방향을 결정하면 노동시간 이슈가 묻힌다.
② 직무급 전환 논의의 법적 리스크 사전 검토. 임금체계 변경은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 과반수(또는 노조) 동의 없는 일방적 전환은 무효 판정 리스크가 크다. 전환을 검토한다면, 기본급 체계가 아닌 성과급·인센티브 구조 조정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다.
③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의 동시 관리. 한국 임금이 높아 보이는 주된 원인이 긴 노동시간이라면, 효율적 시간 관리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임금 경쟁력 논의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시간당 생산성 지표를 내부 KPI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라.
#국제임금비교#시간당임금#직무급전환#노동시간#생산성
참고 링크
- KDI 경제정보센터, “한·일·대만 임금 현황 국제비교와 시사점” (2026)
- 한국일보, “한국 대기업 초봉이 일본보다 41%나 많다고?” (2026)
- 한국경제, “노동생산성 OECD의 72%…주52시간 후 7년째 30위권” (2026)
- ISVD, “5.26% Wage Hike, Fourth Straight Year of Negative Real Wages” (2026)
- 파이낸셜뉴스, “경총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해야’”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