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들어 한국의 고용지표는 표면적으로 “양호”하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1월에 내놓은 이슈노트가 그 표면을 한 꺼풀 벗겨내자, HR이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공공부문 고령자 일자리만 따로 떼어낸 민간고용은 훨씬 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같은 시기 발표된 경영자단체의 노사관계 전망조사는 응답기업의 72.9%가 2026년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본다고 답했고, 그 불안의 1순위는 임금도 노동시간도 아닌 정년연장이었다. 두 데이터를 겹쳐 보면 결론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HR이 2026년 인건비를 다시 짜야 하는 이유는 거시 전망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에 이미 올라온 정년연장 카드 때문이다.
한 줄 요약: 공공부문이 떠받친 고용지표 뒤에서 정년연장 협상이 민간 인건비 구조를 흔들기 시작했고, HR은 거시 전망이 아니라 ‘정년연장 시나리오 3종’으로 2026년 인건비를 재설계해야 한다.
“고용 양호” 통계가 가린 민간 노동시장의 균열
한국은행 이슈노트의 핵심은 단순하다. 2015년 평균 27만 명이던 공공부문 고령자 일자리가 2025년 1~3분기 기준 99만 명으로 약 3.7배 늘었다. 이 수치를 빼고 나면,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증가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공공이 만든 노인 일자리에 의해 설명된다는 의미다. HR 입장에서 중요한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 회사가 채용시장에서 체감하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은 거시지표가 보여주는 그림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 중이다. 통계상 고용률이 유지되더라도, 민간이 실제로 데려올 수 있는 청장년 인력 풀은 추가로 줄고 있다. 둘째, 노사 협상에서 회사가 “거시지표상 고용 사정이 어렵다”는 식의 방어 논리를 쓰면, 노조 측은 한국은행 자료를 그대로 들고 와 “공공이 떠받친 수치를 근거로 임금을 누르려 한다”는 반론을 만들 수 있다. 지표가 정치화되는 구간에 들어선 셈이다.
72.9%
2026년 노사관계 ‘불안’ 전망 응답기업 비율
경총 노사관계 전망조사, 2025
49.7%
핵심 협상 이슈 1위 — 정년연장
경총 노사관계 전망조사, 2025
3.7배
공공부문 고령자 일자리 증가 (27만→99만 명)
한국은행 이슈노트, 2026
33.8%
2026년 핵심 이슈 2위 — 성과급 인상
경총 노사관계 전망조사, 2025
2026년 협상 1순위가 정년연장으로 굳어진 이유
경영자단체 조사가 짚은 49.7%라는 수치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강하다. 2025년까지만 해도 임단협의 1순위 이슈는 거의 항상 임금 인상률이었다. 그것이 2026년 들어 처음으로 정년연장으로 바뀐 배경에는 세 가지 압력이 동시에 들어왔다는 점이 있다.
먼저, 2024년 이후 공공기관·금융권을 중심으로 정년 65세 단협이 잇따라 체결되면서 민간 노조가 들고 올 비교 사례가 충분히 쌓였다. 다음으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 65세로 올라가는 일정이 확정되면서 60세 정년 이후 5년간의 소득 공백이 노조의 가장 강력한 협상 명분이 됐다. 마지막으로, 한국은행이 짚은 것처럼 민간 노동력이 실제로 줄고 있다는 데이터가 사용자 측의 거부 명분을 약하게 만든다. “거시적으로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왜 60세에 내보내냐”는 질문에 회사가 답을 준비하지 못하면 협상은 그 자리에서 정년연장 쪽으로 기운다.
사례 — 한국은행의 민간고용 분리 추정한국은행은 2026년 1월 이슈노트에서 처음으로 공공 고령자 일자리를 따로 떼어낸 민간고용 시계열을 공식 자료로 제시했다. 그동안 사용자 측이 협상에서 들이밀던 “전체 취업자 증가” 논리가 공공 효과로 부풀려져 있었다는 것을 정부 산하 기관이 인정한 셈이다. 노조 자료실이 이 보고서를 인용하는 순간, HR은 같은 보고서로 반박할 수 없다 — 정년연장 협상의 전제 자체가 바뀐다.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은 정책 언어이지 HR의 실행 답이 아니다
같은 시기 고용노동부가 연 제2차 고용정책심의회는 저출생·고령화에 대응한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과 고용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정책 결정의 무게는 충분히 무겁지만, 이 자료를 그대로 사내 보고에 붙이는 순간 HR은 보통 두 가지 함정에 빠진다.
첫째, 정책 자료의 시계는 5~10년 단위인데 HR의 실행 단위는 분기·반기다. “2030년 노동력이 X만 명 부족”이라는 문장은 인사위원회를 설득하는 데에는 좋지만, 당장 다음 달 인건비 시뮬레이션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둘째, 정책 자료는 본질적으로 거시 평균이라 업종·지역·직무별 편차를 흡수해 버린다. 제조업 생산직의 정년연장 비용과 IT 개발직의 그것은 인건비 곡선부터 다르다. HR이 정책 보고서를 인용해 보고서를 만드는 동안, 노조는 이미 비교 사업장 단협을 들고 협상장에 앉는다. 정책 보고서는 배경자료의 자리로 보내고, 실행 자료는 다른 형태여야 한다.
HR이 지금 짜야 할 정년연장 시나리오 3종
실행 자료의 형태는 명확하다. 정년연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단독 옵션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2026년 임단협 시즌이 본격화되기 전에 HR은 다음 세 시나리오를 인건비 모델에 미리 얹어 두어야 한다.
시나리오 A — 재고용형(60세 정년 + 1년 단위 재계약). 정년 자체는 60세로 두되, 60~65세 구간을 1년 단위 촉탁계약으로 운용한다. 기존 호봉을 60% 수준으로 재설계하고, 평가 결과 미달 시 재계약 제외 사유를 단협에 명시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인건비 변동폭이 작고 노조 수용성도 비교적 높지만, “사실상 정년연장 거부”로 해석될 위험이 있어 단협 문안 설계에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시나리오 B — 임금피크 재설계형(정년 65세 + 56세부터 단계 감액).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대신, 56세부터 매년 일정 비율 임금을 낮춰 총인건비 증가를 흡수한다. 2024년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판단한 흐름을 고려해, 직무·업무량 조정과 임금 감액의 연결고리를 인사규정에 미리 넣어 두는 것이 회사 측 방어선이다.
시나리오 C — 직무 분리형(정년 65세 + 시니어 직군 신설). 60세 이후를 별도 직군으로 분리해 직무·평가·보상 체계를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한다. 공정성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인건비 곡선을 가장 평탄하게 만들 수 있지만, 노조가 “차별 직군”으로 규정하면 협상이 가장 길어진다. IT·연구개발 등 직무 차이가 명확한 업종에 어울린다.
세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HR이 먼저 안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노조가 가져온 비교 단협이 그대로 회사의 인건비 미래가 된다. 거시 전망이 아니라 이 세 줄짜리 시나리오 표가 2026년 임단협의 출발선이다.
💡 실무 시사점: 첫째, 한국은행 자료를 노조보다 먼저 사내 보고에 인용해 협상의 데이터 전제를 회사가 잡아라. 둘째, 정년연장은 이미 “할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의 영역이다 — A·B·C 세 시나리오의 5개년 인건비 시뮬레이션을 1분기 안에 임원회의에 올려라. 셋째, 정책 보고서는 배경자료로 격하하고, 비교 사업장 단협 데이터베이스를 사내 자산으로 구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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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한국은행, “민간고용 추정을 통한 최근 고용상황 평가 (이슈노트 제2026-1호)” (2026)
- KDI 경제정보센터, “2026년 노사관계 전망조사 결과” (2026)
- 고용노동부, “2026년 제2차 고용정책심의회 —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과 고용정책 방향”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