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의 직원들, 이제 막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인사팀 메일함에 이런 제보가 들어온다. “우리 팀 A 대리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주말마다 외부 강연을 다닌다더군요.” 담당자는 당황한다. 취업규칙에 겸업금지 조항이 있긴 한데, 어느 선까지 문제 삼을 수 있을까? 그냥 두면 회사 정보가 새나가는 건 아닐까? 반대로 제재했다가 억울하게 퇴직 처리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나.
이 딜레마가 지금 수많은 기업 HR 담당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N잡러·부캐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직원의 대외활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단순한 복무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리스크 설계의 문제가 됐다.
한 줄 요약: 직원의 대외활동을 금지할 수 없는 시대, 기업은 ‘통제’가 아닌 ‘리스크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
숫자로 보는 N잡 시대
48.4%
현재 부업 중인 직장인 비율
인크루트 설문 (2024)
89%
N잡 경험이 있는 직장인 비율
잡코리아·알바몬 설문 (2024)
57%
30대 직장인 부업 비율 (전 연령대 최고)
인크루트 설문 (2024)
직장인 둘 중 하나가 어떤 형태로든 부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숫자 앞에서 “우리 회사는 겸업금지야”라는 한 마디로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솔직히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것에 가깝다. 문제는 금지 가능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관리하느냐다.
법은 겸업금지를 허락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의 겸업 자체를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헌법 제15조가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 그리고 계약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 외의 사적 활동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자유 영역이다.
다만 취업규칙(근로기준법 제93조)에 겸업금지 조항을 두는 것 자체는 합법이다. 문제는 그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하거나 해고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며,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단순 취업규칙 위반만으로는 중징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법원 판례(2009다82244)도 같은 맥락이다.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법원은 사용자에게 보호할 이익이 실재하는지, 제한 범위가 과도하지는 않은지, 근로자에게 적절한 대가가 주어졌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진다. 취업규칙에 한 줄 써놨다고 해서 모든 겸업 활동을 막을 수 있다는 해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되나
판례와 노동위원회 결정례가 징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압축된다. 근로 제공에 실질적 지장이 생긴 경우, 회사의 영업비밀·기밀 정보를 활용한 경우, 그리고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에서 직접 이익을 취한 경우다.
사례 — 대전지방법원A 회사 직원이 임원 특별보좌관으로 외부 조직에서 활동한 사안에서, 법원은 해당 활동이 취업규칙상 경업에 해당하지 않고 회사 이익에 반하는 행동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사외 활동 자체보다 구체적 해악의 존재 여부가 판단의 핵심이었다.
반대로, 근무시간 중 외부 강연 준비에 시간을 쏟아 본업 성과가 저하됐거나, 회사의 미공개 전략 정보를 외부 컨퍼런스에서 언급했거나, 동종업계 경쟁사에 직접 고용된 경우라면 징계 사유로 인정될 여지가 상당히 높다. 이 지점이 핵심이다. 회사가 입증해야 할 것은 “겸업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겸업이 회사에 실질적 해악을 끼쳤다”는 인과관계다.
통제에서 설계로: HR이 해야 할 전환
개인적으로는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취업규칙에 포괄적 겸업금지 조항을 두고 그것으로 안심하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 아쉽다. 이미 법원이 이 포괄적 금지의 한계를 반복해서 선언한 상황에서, 그 조항은 실무적 방패막이가 되기 어렵다.
실효성 있는 방향은 다르다. 포괄적 금지 대신 사전 신고·허가 절차를 설계하는 것이다. 직원이 대외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회사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절차를 취업규칙에 명시하면, 회사는 활동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충돌 여부를 사전에 검토할 수 있다. 이 구조는 법원도 합리적 제한으로 인정한다.
다음으로는 정보보안 기준의 명확화다. “회사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지 말라”는 일반 조항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정보가 기밀인지, 외부 강연이나 SNS에서 무엇을 언급하면 안 되는지를 별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 있다. 이 기준이 있어야 나중에 위반 시 징계도 정당성을 갖는다.
하나는 절차 설계고, 다른 하나는 정보 기준 명확화다. 이 두 가지를 취업규칙과 내부 정책에 병기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접근이다.
취업규칙 변경 시에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 동의(불이익변경인 경우) 또는 의견청취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절차를 건너뛴 변경은 효력이 없으므로, 변경 절차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겸업금지가 아닌 겸업관리, 그 경계선이 기준이다
기업이 직원의 대외활동 전체를 틀어막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설령 취업규칙에 조항을 뒀다 해도, 법원은 실질적 해악 없는 겸업을 이유로 한 징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진짜 리스크를 방치하는 것이다.
결국 HR의 역할은 금지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개입할지를 명확히 설계하는 것이다. 사전 신고 절차, 정보보안 기준, 이해충돌 기준 — 이 세 축이 있으면, 겸업 자체를 막지 않아도 진짜 리스크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그 기준조차 없이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면, 지금이 재점검의 시점이다.
💡 실무 시사점: 포괄적 겸업금지 조항은 법적 실효성이 낮다. 사전 신고·허가 절차와 정보보안 기준을 취업규칙 및 내부 가이드라인에 병기하는 구조로 전환하면, 징계 정당성 확보와 리스크 관리가 동시에 가능하다. 취업규칙 변경 시 근로기준법 제94조 절차 이행은 필수다.
#대외활동#겸업금지#취업규칙#N잡#HR리스크관리
참고 링크
- 잡코리아·알바몬, “직장인 10명중 8명 N잡 경험” (2024)
- 인크루트·뉴워커, “직장인 48.4%, 나는 부업 중이다” (2024)
- 법무법인 청출, “겸직(겸업)을 사유로 한 징계 관련 실무상 쟁점” (2024)
- 엘박스, “N잡러 전성시대, 회사가 직원의 겸직을 징계하기 어려운 진짜 이유” (2024)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