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청년 인구가 10년 사이 7만 7천 명에서 4만 6천 명으로 줄었다. 40%가 사라졌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정부의 고용위기지역 정책은 이 도시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사업체에서는 대조군 대비 유의미한 양(+)의 고용효과가 확인됐다. 수치상으로는 정책이 작동한 셈이다. 하지만 그 ‘유지된 일자리’에 남은 사람은 누구였고, 떠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글의 주장은 단순하다. 고용위기지역 정책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성공할수록, 그 지역의 산업 전환은 더 늦어진다 — 단기 고용 안정이 장기 구조 고착을 가속하는 역설이다.
한 줄 요약: 고용위기지역 정책의 ‘성공 지표’인 유지된 일자리 수가, 실은 지역 노동시장의 구조적 노화를 가속하는 역설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40.8 → 44.5세
조선업 피보험자 평균연령 8년간 변화
KLI 고용영향평가 (2024)
−40%
거제시 청년층(20~30대) 10년간 감소율
행정안전부 인구통계 (2024)
3배
거제 외국인 근로자 5천→1.5만 명 증가
거제시 외국인 고용동향 (2025)
6회
거제시 고용위기지역 지정 연장 횟수
고용노동부 고시 (2018~2024)
평균연령 3.7세가 말해주는 것
고용영향평가 보고서는 전남 목포·해남·영암 조선업 피보험자의 평균연령이 2015년 40.8세에서 2023년 44.5세로 올랐다고 기록한다. 숫자로는 3.7세. 8년치 시계를 감안하면 자연 고령화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과대해석을 경계해야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같은 기간, 이 지역 조선업 종사자의 약 35%가 피보험자격을 상실했고, 다른 산업으로 이동한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나머지 50%가 조선업에 남았다. 떠난 35%가 누구였는지를 보고서는 직접 말하지 않지만, 직종별 데이터가 간접적으로 답한다. 기능원 관련직이 큰 폭으로 줄었고, 남은 건 용접원·단순직·도장원이다. 숙련 기능인력이 빠지고, 상대적으로 대체가 용이한 직종이 남았다는 뜻이다.
솔직히, 평균연령 상승은 ‘고령화’라는 단어로 쉽게 치환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합적인 현상이다. 젊고 숙련된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남은 인력의 평균연령이 올라간 것이지, 기존 인력이 단순히 나이를 먹은 게 아니다. 이 구분이 정책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전자라면 ‘유지’가 아니라 ‘유입’이 해법이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유지한 것과 유지하지 못한 것
고용유지지원금의 설계 논리는 명확하다. 경영 위기 상황에서 사업주가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도록 인건비 일부를 보전한다. 해고를 막으면 실업이 줄고, 경기가 회복되면 그 인력이 다시 생산에 투입된다. 위기가 일시적이라면 이 논리는 작동한다.
그런데 조선업처럼 구조적 전환기에 놓인 산업에서는 전제 자체가 흔들린다. 보고서가 확인한 ‘양(+)의 고용효과’는 고용유지지원금과 사업주직업훈련에 참여한 사업체에서 나타났다. 대조군보다 고용 수준을 더 잘 유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가 장기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덧붙인다. 보조금이 투입되는 동안에는 숫자가 유지되지만, 그 이후에는 차이가 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보고서에서 가장 의미 있는 문장이라고 본다. ‘효과 있음 + 장기 효과 제한적’이라는 두 결론을 나란히 놓으면, 결국 보조금이 한 일은 구조조정의 시점을 뒤로 미룬 것이지 구조를 바꾼 게 아니다.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버티게 하는 설계는, 위기가 지나가지 않는 산업에서는 만성적인 연명 장치가 된다.
숙련이 빠지고 단순이 채운 구조
직종 구성 변화 데이터가 이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능원 관련직은 큰 폭으로 감소했고, 사무직과 기계·장치 조작원도 줄었다. 반면 용접원, 관리직, 제조 단순직, 도장·도금원은 증가했다.
사례 — 거제시 조선업 2015년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며 숙련 인력이 대거 이탈했다. 2022년 이후 수주 회복기에 빈자리를 채운 건 외국인 인력이었다. 거제 지역 외국인 근로자는 5천여 명에서 1만 5천 명으로 3배 증가했고, 거제시는 조선업 재직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114억 원 규모의 ‘희망공제사업’을 별도로 편성해야 했다.
이 흐름을 읽으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보조금으로 일자리를 유지하는 동안 숙련 인력은 이미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났다. 남은 자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숙련도의 인력이 채워졌고, 수주가 회복된 이후에는 그마저 부족해서 외국인 인력으로 메웠다. 보조금은 일자리의 ‘수’를 유지했지만, 일자리의 ‘질’은 유지하지 못했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는 보고서의 또 다른 발견이 이 맥락에서 읽힌다. 숙련 인력이 대기업으로 집중되고, 중소 하청업체에는 저숙련·고령 인력이 남는 양극화가 위기지역 내부에서도 진행된 것이다.
떠난 3만 명은 합리적이었다
거제시에서 10년간 빠져나간 청년 3만 1천 명의 선택을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업이라는 단일 산업에 의존하는 도시에서 그 산업이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갔을 때,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떠나는 것이다. 울산 동구, 통영도 마찬가지였다. 통영시의 청년인구 비중 감소 속도는 연 1.054%p로 전국 상위권에 진입했다.
여기서 정책의 역설이 선명해진다. 고용위기지역 지정의 목적은 지역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지만, 정작 보조금의 혜택은 기존 사업체와 기존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새로운 산업을 만들거나, 떠나려는 청년을 붙잡을 유인을 설계하는 건 별도의 사업이다. 결과적으로 보조금은 이미 있는 것을 유지하는 데 집중되고, 아직 없는 것을 만드는 데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전국 16개 시도 중 15개 지역에서 노동시장 긴축도가 상승했지만, 동시에 12개 지역에서 미스매치 지수도 커졌다는 데이터가 있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맞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고용위기지역 정책이 일자리의 총량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일자리가 지역의 인구 구조·숙련 수요·산업 전망과 맞지 않으면 유지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한 의미가 퇴색한다.
6번 연장이 증명한 것
거제시는 2018년 고용위기지역으로 최초 지정된 뒤 6차례 연장을 거쳐 2024년 6월 지정 기간이 종료됐다. 6년이다. 군산, 통영, 고성, 창원 진해구, 울산 동구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본래 고용위기지역 지정은 단기 충격 완화를 위한 한시적 조치다. 그런데 6번 연장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책이 ‘일시적 위기’를 대상으로 설계되었으면서도 ‘구조적 전환’에 투입되었다는 방증이다.
이건 좀 짚어야 한다 보고서는 향후 대안으로 “최소 2년 단위 중장기 전략, 원년에는 보편적 지원 중심, 연장 시에는 타겟 산업 중심 핀셋형 지원”을 제안한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제안 안에도 전제가 숨어 있다 — ‘지정’과 ‘연장’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핀셋형이든 보편형이든, 위기지역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보조금을 투입하는 구조 안에서는 지역 스스로가 산업 전환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2026년 정부 예산안에 ‘지역 고용둔화 대응사업’이 신설 추진 중이라는 점은 변화의 신호다. 명칭만 놓고 보면 ‘위기 대응’에서 ‘둔화 대응’으로 프레임이 이동한 것이고, 이는 일시적 충격이 아닌 추세적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다만 실제 사업 내용이 기존 고용유지지원금의 변형인지, 산업 전환을 직접 지원하는 별도 트랙인지에 따라 실효성은 갈릴 것이다.
유지의 성공이 전환의 실패가 되는 구조
이 글이 고용유지지원금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급성 위기 국면에서 대량 실업을 방지하는 기능은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급성기가 끝난 뒤에도 같은 도구를 반복 투입할 때 발생한다. 보조금으로 유지된 사업체에서 고용이 유지되는 동안, 그 바깥에서는 청년이 떠나고, 숙련이 빠지고, 직종 구조가 하향 평준화되고,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 보조금 안의 세계와 보조금 밖의 세계가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역설은 고용위기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용보험 가입자 통계를 보면, 60세 이상 가입자 수 증가 폭이 전체 증가를 거의 주도하고 있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22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전국 수준에서도 ‘유지’는 되고 있지만, 그 유지의 내용물이 바뀌고 있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를 보지 않으면, 고용 수치의 안정은 구조적 쇠퇴를 가리는 스크린이 된다.
고용위기지역 정책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이, 지역이 스스로 변해야 할 시간을 빼앗았다. 정책의 성공 지표가 정책의 실패를 은폐하는 구조 — 이것이 전남 목포·해남·영암 보고서가 데이터로는 보여주면서도 결론으로는 말하지 않은 이야기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위기지역 소재 사업장의 인력 구조를 ‘수’가 아닌 ‘질’로 진단하라.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유지된 인원의 연령·숙련도·직종 분포를 분기별로 모니터링하지 않으면, 보조금 종료 시점에 실질적 인력 공백이 얼마인지 파악할 수 없다.
② 보조금 수혜 기간 중 산업 전환 준비를 병행 설계하라. 고용유지지원금은 해고를 막아주지만 신규 직무 개발이나 전직 지원은 별도다. 보조금이 끝난 뒤의 인력 포트폴리오를 지금 설계하지 않으면, 6번째 연장이 7번째가 될 뿐이다.
③ 청년 유출 데이터를 채용 전략의 선행지표로 활용하라. 거제·통영·군산의 청년 인구 감소 속도는 해당 지역 인력 수급의 미래를 직접 예고한다. 지역 사업장이라면 외국인 인력 의존도와 숙련 인력 확보 계획을 동시에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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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한국노동연구원(KLI), “전남 목포·해남·영암 고용위기 및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지원에 따른 고용효과” (2024)
- 뉴시스, “10년간 20~30대 168만명 줄었다…전남·경북 20%도 안돼 ‘심각’” (2024)
- 거제시청, “거제시, 고용위기지역 지정기간 종료를 대비한 연착륙 지원 박차” (2024)
- 한산신문, “통영의 현재 – 1편 2025년 통영! 그리고 내일을” (2025)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년 고용노동부 중점과제 발표”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