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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걸러내고 있었다 — 88%가 인정한 채용 자동화의 자작극

공고 1건당 지원서 257통. 2024년 207건에서 1년 만에 24% 늘었다. 기업은 “지원자가 넘쳐난다”고 말하고, 동시에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이 두 문장은 같은 회의실에서, 같은 인사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원서 257통 가운데 사람 눈에 닿는 건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채용관리시스템(ATS)이라는 자동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기업이 말하는 ‘인재 부족’의 상당 부분은 자사 시스템이 만들어낸 허구다 — 88%의 기업이 자사 ATS가 적격 지원자를 탈락시킨다고 인정하면서도 같은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이 모순의 핵심이다.

한 줄 요약: ‘인재 부족’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현실이 아니라, 채용 자동화가 만들어낸 자작극이다 — 88%가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고치지 않는 이유를 파헤친다.

지원서 257건 시대, 사람 눈에 닿는 건 64건뿐

포춘 500 기업의 99%가 ATS를 사용한다. 직원 50~999명 규모의 기업도 절반 이상이 도입했고, 1,000명 이상 대기업은 69%가 채용관리시스템(RMS)을 운영한다. 중간 숙련 직무에서 1차 서류 심사를 ATS에 맡기는 비율은 94%, 고숙련 직무도 92%에 달한다. 솔직히 이건 채용이 아니라 탈락 자동화에 가깝다.

257

공고 1건당 평균 지원서 수 (2026)

OneHour Digital — ATS 필터링 통계 (2026)

75%

사람 눈에 닿기 전 ATS에서 탈락하는 이력서 비율

EDLIGO — ATS 적격 후보 손실 분석

88%

자사 ATS가 적격자를 탈락시킨다고 인정한 기업 비율

HBS / Accenture — Hidden Workers 보고서

68%

파싱 오류만으로 탈락하는 적격 지원자 비율

EDLIGO — 이력서 파싱 에러 분석

ATS가 이력서를 거르는 방식은 단순하다. 대학 졸업 여부, 6개월 이상 경력 공백, 특정 키워드의 유무. 이 필터들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서류상 맞는 사람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중간 숙련 직무의 직무기술서 72%가 이전 공고를 재활용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필터의 기준 자체가 현재 업무와 동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은 정밀하게 작동하지만, 조준점이 틀어져 있다.

“거른 줄 알고 있다” — 88%의 고백이 바꾸지 못한 것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셉 풀러(Joseph Fuller) 교수가 액센추어와 함께 수행한 2년간의 연구 결과는 불편하다. 미국·영국·독일의 기업 2,275곳에 물었더니, 과반수가 자사 채용 시스템이 “생산적일 수 있는 지원자를 거부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2026년 후속 조사에서 그 수치는 88%까지 올라갔다. 개인적으로는 나머지 12%가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인정하기 싫은 건지 궁금하다.

풀러 교수의 진단은 명쾌하다.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기업이 불평하는 인재 부족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효율’이라는 단어다. ATS는 채용 담당자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존재한다. 지원서 257통을 일일이 읽을 수 없으니 기계가 걸러주는 것이다. 문제는 그 ‘효율’의 측정 기준이 시간 대비 처리 건수지, 적합한 사람을 찾았는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채용 담당자의 KPI가 ‘채용 소요 기간(time-to-fill)’과 ‘건당 비용(cost-per-hire)’에 묶여 있는 한, ATS의 공격적 필터링은 합리적 선택이 된다. 지원자를 많이 거를수록 담당자가 검토할 분량이 줄고, 채용은 빨라지며, 비용은 낮아진다. 지표상으로는 완벽한 성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퇴장당한 적격자들이 만들어내는 ‘인재 부족’은 같은 지표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2,700만 명의 유령 인력 — 시스템이 만든 보이지 않는 노동자

풀러 교수 연구의 가장 무거운 숫자는 이것이다. 미국에만 2,700만 명이 ‘숨은 노동자(hidden workers)’로 분류된다. 일할 의지가 있고, 일할 능력이 있지만, 자동화된 채용 시스템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돌봄 종사자, 퇴역 군인, 고령 노동자, 전과자, 경력 단절자, 4년제 학위 미보유자가 여기 속한다.

이들의 구직 경험은 숫자로 읽어도 답답하다. 평균 5년간 25개 포지션에 지원해서 받는 합격 통보는 1건. 4년제 학위가 없거나 관련 경력이 부족한 지원자는 20개 포지션에 지원해도 합격이 2건 미만.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하는 비율은 5명 중 1명. 장기 실업자는 평균 44개 포지션에 지원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례 — Derek Mobley 40대 흑인 남성,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가진 장애인이었던 모블리는 Workday의 AI 채용 시스템을 사용하는 기업에 100회 이상 지원했지만 단 한 번의 면접 기회도 얻지 못했다. 2024년 7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은 이 사건에서 채용 AI 벤더 Workday가 고용주의 ‘대리인’으로서 차별금지법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 AI 벤더도 차별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최초의 법적 선언이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이른바 ‘인재 부족’이라는 현상의 상당 부분이 실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요 측의 인식 실패라는 점이다. 일할 사람은 있다. 다만 시스템이 그들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없다’고 보고할 뿐이다.

역설의 증거 — 숨은 인재를 고용한 기업의 성적표

만약 ATS가 거른 사람들이 정말 부적격자였다면, 이 이야기는 비효율적 시스템에 대한 불평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는 정반대를 말한다. 숨은 노동자를 의도적으로 채용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인재·스킬 부족을 경험할 가능성이 36% 낮았다.

36%

숨은 노동자 채용 기업의 인재 부족 경험 감소율

HBS / Accenture — Hidden Workers (8,720명·2,275기업 조사)

2,700만 명

미국 내 숨은 노동자 규모 (2020 기준)

HBS — Managing the Future of Work

76%

인재 부족을 호소하는 전 세계 기업 비율 (2025)

ManpowerGroup — 글로벌 인재 부족 서베이

성과 지표는 더 놀랍다. 숨은 노동자 출신 직원은 기존 채용 경로로 입사한 직원 대비 업무 태도, 생산성, 업무 품질, 몰입도, 출근율, 혁신성 등 6개 항목에서 ‘동등하거나 유의하게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발적 이직률도 낮았다. 아마존, GM, 마이크로소프트, IKEA, UPS 같은 기업이 이미 이 경로를 활용 중이다.

이건 좀 아이러니한 구조다. 시스템이 거른 사람들이 시스템을 통과한 사람들보다 성과가 더 좋다면, 대체 그 시스템은 무엇을 측정하고 있는 걸까. 학위와 경력 키워드는 ‘일을 잘할 사람’의 대리 지표(proxy)로 설계되었지만, 대리 지표가 실제 역량과 괴리될 때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으로 틀린 판단을 내리는 기계가 된다.

Workday 판결이 열어젖힌 책임의 공백

2024년 7월,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의 판결은 채용 AI의 법적 지형을 바꿨다. 법원은 Workday가 단순한 소프트웨어 도구가 아니라 고용주의 “대리인(Agent)”으로서 차별금지법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봤다. Workday 측은 “최종 결정권은 인사 담당자에게 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실질적 기능에 주목했다. 자동 거절, 점수 매기기, 순위 결정 — 이것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결정 도구(Determinative Tool)라는 것이다.

이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전까지 채용 AI 시장에는 편리한 책임의 공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알고리즘이 판단한 것”이라며 벤더 뒤로 숨고, 벤더는 “우리는 고용주가 아니다”라며 빠져나갔다. 법원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경고 — 한국의 규제 사각지대 한국 AI기본법은 채용을 ‘고영향 AI’로 분류하지만, 적용 범위가 “채용 등 개인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단”에 한정된다. EU AI법이 모집·관리·해고의 전 생애주기를 규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민법상 AI가 독립된 법적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Workday 식 ‘대리인’ 프레임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잡코리아, 사람인 같은 플랫폼과 그리팅 같은 ATS, 제네시스랩 같은 AI 면접 솔루션이 혼재돼 있다. 대부분 AI를 ‘보조·추천 도구’로 포지셔닝하며 완전 자동화를 피하고 있지만, 1차 서류 심사에서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재검토 의무가 있지만, 지원자가 탈락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경로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채용은 언제부터 ‘찾기’가 아니라 ‘거르기’가 되었나

이 모든 현상의 뿌리를 짚으려면 채용의 목적 함수가 언제, 왜 바뀌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원래 채용은 ‘조직에 맞는 사람을 찾는’ 행위였다. 그런데 지원 규모가 폭증하면서 — 2024년 207건, 2026년 257건 — 채용의 1차 과제가 ‘거를 사람을 줄이는 것’으로 전환됐다. ATS는 이 과제에 최적화된 도구다. 문제는 최적화의 방향이다.

ATS의 부정적 필터(negative filter)는 ‘이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이 사람을 빼야 하는 이유’를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학위 미보유, 경력 공백, 키워드 불일치 — 모두 탈락 사유다. 풀러 교수가 제안하는 긍정적 필터(affirmative filter)는 반대다. ‘성공과 상관관계가 입증된 필수 역량과 경험을 가진 지원자를 식별’하는 것. 같은 데이터를 보면서 질문의 방향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달라진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최적화할 것인가라는 조직적 선택의 문제다. 채용 담당자가 ‘채용 소요 기간’이 아니라 ‘입사 후 생산성 도달 시점’, ‘재직 기간’, ‘승진 비율’ 같은 장기 지표로 평가받는다면, ATS의 필터 설계는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을 바꾸기 전에 지표를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거르기에서 찾기로 — 되돌리는 법

인재 부족이 자작극이라면, 해법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풀러 교수 연구팀이 제시한 전환 전략은 화려하지 않지만 구조적이다.

채용 전(前) 단계에서는 직무기술서를 정기적으로 갱신하고, 실제 업무 수행에 불필요한 자격 요건을 삭제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중간 숙련 직무의 72%가 이전 공고를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것만으로도 필터의 정확도는 상당히 올라간다. 부정적 필터를 긍정적 필터로 교체하고, 건강의료 조직이 돌봄 경험자를 타겟 채용하듯 숨은 노동자 하위 그룹에 맞는 전략적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포함된다.

채용 후(後) 단계는 더 중요하다. 숨은 노동자는 전통적 경로의 입사자와 다른 온보딩이 필요하다. 경력 단절자에게는 조직 문화 적응 기간이, 학위 비보유자에게는 내부 교육 기회가, 전과자에게는 동료·관리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채용 성과 측정을 단기 비용 지표에서 장기 가치 지표로 전환해야 한다. 채용 소요 기간이 아니라 생산성 도달 시점, 재직 기간, 승진율을 보는 것이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직무기술서 감사(JD Audit). 현재 사용 중인 직무기술서가 실제 업무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한다. ‘대졸 이상’, ‘경력 3년 이상’ 같은 요건이 정말 성과와 연관되는지 데이터로 검증하라. 72%의 기업이 재활용 JD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필터 기준이 관성의 산물임을 뜻한다.

② ATS 필터 전환. 부정적 필터(탈락 조건)를 긍정적 필터(성공 예측 조건)로 교체하는 파일럿을 1개 직무에서 시작한다. 학위 유무가 아니라 실제 스킬 보유 여부로 1차 심사 기준을 재설계하면, 후보자 풀이 넓어지면서도 적합도는 높아진다.

③ 채용 KPI 재설계. ‘time-to-fill’과 ‘cost-per-hire’에만 묶인 채용 성과 지표에 ‘time-to-productivity’, ‘1년 재직률’, ‘입사 후 성과 평가’ 항목을 추가한다. 측정하는 것이 바뀌면 최적화의 방향도 바뀐다.

#ATS채용개선 #숨은인재 #스킬기반채용 #채용KPI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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