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정기 임원인사 시즌, 숫자 하나가 눈에 띈다. SK그룹이 발탁한 신규 임원 85명 가운데 17명, 즉 20%가 1980년대생이었다. 평균 연령은 48.8세로 전년 대비 0.6세 낮아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988년생 상무를, LG CNS는 1986년생 상무를 각각 ‘최연소 임원’으로 올려세웠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대기업 임원실 문을 두드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단순히 “젊은 피 수혈” 정도로 읽기엔 스케일이 다르다. 2026년 재계 인사의 진짜 키워드는 ‘2인자 체제의 해체’다.
한 줄 요약: 2026년 한국 재계는 부회장 체제를 걷어내고 80년대생·오너 3·4세·직원이사를 동시에 올린다. 관리의 시대가 끝나고 실행의 시대가 열렸다.
부회장이 사라진다
20%
SK 신규 임원 85명 중 1980년대생 비중 — 평균 연령 48.8세 (-0.6세)
한경비즈니스 2026 재계 리셋 (2025)
20명
롯데그룹 부회장 4명 전원 퇴진 + CEO급 동시 교체 규모
한경비즈니스 2026 재계 리셋 (2025)
161명
삼성전자 5년 만의 대규모 승진 인사 — AI·반도체·로봇 미래기술 전문가 중심
한경비즈니스 (2025)
LG그룹은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퇴임과 함께 부회장 자리를 사실상 1명 체제로 축소했다. 롯데그룹은 더 과감했다. 기존 4명의 부회장이 전원 일선에서 물러나고, CEO급 20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삼성전자 역시 정현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임했고, HD현대에서는 권오갑 명예회장이 용퇴했다.
왜 이런 결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의사결정 라인의 단순화다. 오너 → 부회장 → 사장 → 부사장으로 이어지던 다단계 의사결정 구조에서 부회장이라는 중간 레이어를 걷어내고, 실행 책임을 맡은 CEO가 오너와 직접 소통하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5년 만에 단행한 대규모 승진 인사에서 총 161명을 승진시키면서 AI·반도체·로봇 등 미래기술 전문가를 대거 끌어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리’보다 ‘기술’을 아는 리더를 전면에 세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오너 3·4세의 전면 등장
사례 — 롯데쇼핑 정현석 부사장 1975년생. 유니클로 한국법인(에프알엘코리아) 대표 시절 일본 불매운동이라는 최악의 위기를 만나 1년 만에 흑자전환, 3년 만에 매출 원상회복을 만든 인물.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우철과 함께 이원 체제로 쇼핑 부문 사내이사에 올랐다. 사외이사진도 마이크로소프트·델 출신 AI 전문가가 합류해 이사회 자체가 ‘디지털 전환’을 지향하는 구성으로 바뀌었다.
부회장이 빠진 자리를 채운 건 오너가(家)의 차세대 경영인들이다. HD현대는 정기선 회장을 그룹 최고 사령탑으로 올리며 5년 내 매출 100조 원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GS그룹은 허용수·허세홍을 나란히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롯데그룹은 신유열 부사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선임하면서 바이오 신사업의 키를 쥐어줬다. 삼양식품의 전병우 COO는 2년 만에 전무로 올랐고, 농심의 신상열 전무는 1년 만에 부사장이 됐다. 공통점은 “성과로 검증된 오너 후계자에게 실권을 넘긴다”는 점이다.
현장 목소리가 이사회에 앉다
세대교체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변화가 하나 더 있다. 직원이사제의 등장이다.
에코프로그룹은 배터리 업계 최초로 직원이사제를 도입했다. ‘에코프로 명인 1호’로 불리는 현장 직장(職長)급 실무자가 사내이사가 되어 이사회에 참여하는 구조다. 에코프로비엠의 배문순 직장,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김관후 직장이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에코프로는 이사회 내 위원회를 6개(내부거래·컴플라이언스·감사·지속가능경영·보상·사외이사후보추천)로 확대하고, 2025년에 보상위원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사외이사를 과반으로 채웠다. 상장사 4곳에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것도 같은 해다. 요컨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되, 현장의 전문성도 이사회로 끌어올리겠다”는 양면 전략이다.
왜 지금, 동시에 움직이나
이 모든 변화가 2026년이라는 같은 시점에 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 가지 압력이 겹쳤다.
첫째, AI·반도체·바이오 등 기술 전환의 속도다. 과거 “잘 관리하면 되는” 레거시 사업 중심 경영에서는 경험 많은 2인자가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기술 패러다임이 2~3년 단위로 뒤집히는 지금, 의사결정 한 단계가 추가될 때마다 실행 속도가 떨어진다. 리더십 라인을 줄이는 게 경쟁력이 된 시대다.
둘째, ESG와 거버넌스에 대한 시장의 요구다. 기관투자자와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들이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체크리스트처럼 확인하기 시작했다. 직원이사제, 사외이사 과반 구성,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이런 외부 압력에 대한 적극적 응답이다.
셋째, 오너 승계의 완결이다. 2세대 전문경영인(부회장급)이 만든 ‘완충 지대’를 걷어내야 3·4세 오너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세대교체는 단순 인사가 아니라 지배구조 재설계의 일부다.
커리어케어 유정록 전무는 이를 “레거시 사업에서 벗어나 미래 기술을 이끌 수 있는 실무 중심 리더를 전면에 세우겠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이 변화가 성공하려면 신사업 중심 포트폴리오 재설계, 애자일 조직 구축, 핵심 인재 리텐션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HR 담당자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
💡 실무 시사점 — 2026년 리더십 재편이 HR에 던지는 4가지:
① 직급 체계 재검토. 부회장 폐지가 상징하듯 ‘계층 축소’가 대세. 직급 단계가 많은 조직이라면 의사결정 속도와 직급 구조의 관계를 점검해볼 시점.
② 발탁 인사 기준의 재정의. “몇 년 차”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냈느냐”가 승진의 기준. 연공서열 평가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면 성과·역량 기반 승진 트랙 병행안을 검토.
③ 직원 참여형 거버넌스. 직원이사제는 아직 소수 기업 실험이지만 ESG 경영 확산과 함께 빠르게 논의가 확대될 가능성. 노사협의회를 넘어 직원 의견이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구조적 채널을 미리 설계.
④ 이사회 다양성 점검. 사외이사에 AI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이사회 구성 자체가 전략적 의제. HR이 이사회 인재풀 구성에 관여할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2026년 재계의 리더십 대전환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관리의 시대는 끝났고, 실행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 실행을 설계하는 건 결국 HR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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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한경비즈니스, “‘이재용·구광모의 남자들’ 전면 퇴장…2026 재계 리셋의 의미” (2025)
- 한경비즈니스, “롯데쇼핑 정현석·차우철 체제 확립…제56기 정기 주총” (2026)
- 한경비즈니스, “에코프로그룹 업계 최초 직원이사제 도입…현장 중심 의사결정 강화”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