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9곳이 AI가 자사 인력 구조를 바꿀 거라고 인정했다. 머서(Mercer)의 2025/2026 스킬 스냅샷 서베이 결과다. 그런데 정작 스킬 라이브러리를 전사 단위로 구축한 곳은 38%에 불과하다. 인정은 하되, 준비는 안 된 셈이다.
질문 하나. 당신 회사는 직원을 ‘직무’로 관리하는가, ‘스킬’로 관리하는가? 대부분은 전자일 거다. 문제는 AI 시대에 직무 단위 관리가 빠르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직무에서 스킬로, 왜 지금인가
전통적 HR은 ‘포지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채용공고에 직무기술서(JD)를 쓰고, 그 JD에 맞는 사람을 뽑고, 해당 직무 등급에 따라 보상을 설계한다. 수십 년간 잘 작동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AI 도구가 특정 직무의 핵심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이 사람이 어떤 직무에 앉아 있는가’보다 ‘이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머서 조사에서 55%의 기업이 스킬을 직무에 직접 매핑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건 2023년 47%에서 꽤 큰 폭으로 뛴 수치다.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라고 본다. 스킬 매핑이 완료된 직무 비율도 평균 72%까지 올라갔다. 2023년 69%에서 3%포인트 상승. 작아 보이지만, 전사 단위로 치면 수천 개 직무가 새로 정리된 거다.
리더십도 다시 정의되고 있다
스킬 전환이 실무 레벨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는 2025년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역량을 꼽았다.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 AI 리터러시(AI fluency), 그리고 포용적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이다.
솔직히 이건 좀 뻔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데 있다. AI를 잘 다루지만 팀원과 소통이 안 되는 리더, 포용적이지만 변화에 느린 리더—어느 쪽이든 2025년형 조직에서는 제 역할을 못 한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기존 판단 틀을 빠르게 수정하는 능력이다. 어제까지 맞았던 전략이 오늘 틀려질 수 있는 환경에서,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까”는 가장 위험한 말이 된다. 된다.
AI 리터러시는 코딩 능력이 아니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이해하고, 조직 내 AI 활용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판단력이다. 실무자가 챗GPT를 잘 쓰는 것과, 리더가 AI 전략을 세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CHRO, 비용 절감의 실행자에서 전략 파트너로
BCG는 최근 보고서에서 CHRO(최고인사책임자)의 역할 변화를 짚었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인원수를 넘어서(Beyond Headcount).” 비용 절감이 필요할 때 HR의 역할이 단순히 구조조정 인원을 산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그렇다.
실제로 비용 전환(cost transformation)에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CHRO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점이다. 어디를 자를지가 아니라, 어떤 역량을 보존하고 어디에 재투자할지를 함께 설계한 거다. 인력 감축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비용 구조를 만들 수 없다. 줄이면서 동시에 핵심 인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C레벨이 CHRO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CHRO 역할이 아직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인사담당 임원은 경영진 회의에서 ‘비용 항목’으로 불려가지, ‘전략 파트너’로 초대받지는 못한다. 여기가 바뀌어야 한다.
스킬 기반 보상, 가능한가
스킬 중심으로 인력을 관리한다면, 보상도 스킬에 연동해야 논리적으로 맞다. 머서 보고서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스킬을 보상 체계와 경력 개발 프레임워크에 연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스킬의 시장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스킬 보유 여부를 누가 검증할 것인지, 스킬이 진부화(obsolescence)되었을 때 보상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된다.
머서가 제안하는 접근법은 단계적이다. 조직 비전 정의 → 이해관계자 참여 → 구현 로드맵 수립 → 파일럿 검증. 교과서적이라 재미는 없지만, 실무에서는 이 순서를 건너뛰는 곳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강조할 가치가 있다.
솔직히 이건 좀 어려운 문제다. 직급 기반 호봉제에 익숙한 한국 조직에서 스킬 기반 보상은 파격적 전환을 의미한다. 노동법적으로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근로기준법 제94조) 이슈가 걸릴 수 있다. 스킬 평가 결과에 따라 기존 임금이 하향 조정된다면, 근로자 과반수 동의 절차가 필요해진다.
결국 HR이 답해야 할 질문
세 보고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HR은 더 이상 지원 부서가 아니라 사업 전략의 핵심 축이어야 한다는 것. 스킬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리더 역량을 재정의하고, 비용 구조를 전략적으로 재편하는 일—이 모든 게 HR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당신의 조직은 직원의 스킬을 정말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채용 때 받은 이력서가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정보인가?
참고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