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앤스로픽이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를 공개한 날 나스닥에서 SaaS 종목 시가총액 약 2,850억 달러가 증발했다. 톰슨 로이터 -18%, 리걸줌 -20%.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신조어가 바로 그 주에 태어났다. HR 실무자 입장에서 궁금한 건 딱 하나였다. “우리가 쓰는 Workday, 플렉스, 시프티 — 그 ‘좌석당 과금’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한 줄 요약: AI 에이전트가 SaaS의 좌석(seat)을 대체하면서 HR 도구의 가격 모델·도입 기준·실무 워크플로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업장이 지금 점검해야 할 건 ‘어떤 도구를 쓸까’가 아니라 ‘도구 위에 에이전트를 얹을 수 있는 구조인가’다.
좌석이 사라진다 — ‘per-seat’ 모델의 균열
SaaS 비즈니스의 근간은 20년 넘게 좌석당 과금(per-seat licensing)이었다. 인사팀 10명이 Workday를 쓰면 10석 비용을 낸다.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모델이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그 좌석 중 3~4개를 차지하기 시작하면? 가트너에 따르면 2026년 말까지 기업용 앱의 40%에 특화된 AI 에이전트가 내장된다. 좌석 기반 라이선싱의 시장 점유율은 1년 만에 21%에서 15%로 떨어졌고, 하이브리드·소비 기반 모델이 41%까지 치솟았다.
솔직히 이건 좀 충격적인 속도다. 20년간 유지된 과금 체계가 12개월 만에 6%포인트 하락했다는 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 변동이다.
워크데이가 올해 내놓은 ‘Flex Credits’가 대표적 사례다. 기존 직원당 월과금(PEPM) 대신 소비 기반 크레딧을 도입했다. HR팀이 채용 에이전트를 많이 쓴 달에는 크레딧을 더 태우고, 평가 시즌이 아닌 달에는 줄이는 식이다. 퍼포먼스 에이전트, 케이스 에이전트, 직무체계 에이전트 등 7개 AI 에이전트가 워크데이 일루미네이트(Illuminate) 플랫폼 위에서 이미 돌아가고 있다.
40%
2026년 말까지 AI 에이전트 내장 예상 기업 앱 비율
Gartner, 2026
21→15%
좌석 기반 과금 시장 점유율 (1년 간 변화)
삼성SDS 인사이트리포트, 2026
86.7%
HR 업무에 AI 도구 사용 중인 매출 상위 500대 기업
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 2025
HR에서 에이전트가 실제로 빼앗는 워크플로
SaaS가 ‘대시보드를 보여주는 도구’였다면, AI 에이전트는 ‘결과를 직접 만들어내는 실행자’다. 차이가 크다. 코히시티(Cohesity)라는 기업은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드 에이전트를 연결해 퇴직자 오프보딩(계정 비활성화, 장비 회수 프로세스)을 이틀 만에 자동화했다. 서비스나우에서 같은 기능을 구축하면 월 수백 달러씩 좌석 비용이 나왔을 걸, 에이전트 하나로 끝낸 셈이다.
맥도날드의 사례도 흥미롭다. 5만 개 매장의 프랜차이즈 네트워크에서 AI 관리 도구를 도입해 매장 관리자의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고, 그 시간을 직원 인게이지먼트에 재투자하고 있다. 이건 ‘비용 절감’ 이야기가 아니다. 관리자의 역할 자체가 ‘데이터 입력자’에서 ‘사람 관리자’로 바뀌는 구조적 전환이다.
사례 — 코히시티(Cohesity)의 오프보딩 자동화클로드 코드 에이전트로 퇴직자의 계정 비활성화와 장비 회수 프로세스를 2일 만에 구축했다. 기존에는 서비스나우 좌석 라이선스(월 수백 달러/인)로 구현해야 했던 작업이다. HR팀 입장에서 ‘좌석 하나를 사느냐, 에이전트 하나를 붙이느냐’의 선택지가 현실이 됐다는 뜻이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좀 다르다. 국내 HR SaaS 시장은 시프티·플렉스·그리팅 같은 도구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지만, 대부분 ‘근태·급여·채용’ 같은 코어 프로세스에 집중돼 있다. 에이전트를 얹을 수 있는 API 구조가 열려 있는 경우는 아직 소수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한국 HR테크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도구를 사는 게 아니라, 도구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을 사야 하는 시대인데, 구매 기준이 아직 ‘기능 체크리스트’에 머물러 있다.
SaaS는 죽지 않는다 — 하지만 ‘도구’에서 ‘인프라’로 바뀐다
사스포칼립스라는 말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SaaS가 통째로 사라지는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이다. 전자신문의 분석대로 SaaS는 ‘SaS(Service as Software)’로 진화하는 중이다. 도구가 서비스를 직접 수행하고 결과를 내놓는 구조.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 서비스나우의 나우 어시스트, 워크데이의 일루미네이트가 이미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팔란티어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109% 성장한 반면, 세일즈포스·SAP·어도비는 10% 성장에 그쳤다는 수치가 이 흐름을 압축한다. 에이전트 네이티브 플랫폼과 전통 SaaS의 성장률 격차가 10배다.
HR 실무자에게 이게 의미하는 건 뭘까. 지금 쓰고 있는 인사 시스템이 ‘에이전트를 얹을 수 있는 인프라’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API가 열려 있는가? 데이터를 외부 에이전트가 읽고 쓸 수 있는가? 아니면 폐쇄형 SaaS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2~3년 안에 시스템을 갈아타야 할 가능성이 높다.
가트너가 동시에 내놓은 예측도 있다. 2027년 말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이라고. 이건 좀 아이러니하다. 도입도 빠르지만 실패도 빠를 거라는 뜻이다. 결국 에이전트를 ‘제대로’ 붙이는 역량이 HR팀의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한국 사업장이 지금 체크해야 할 것들
한국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86.7%가 이미 HR 업무에 AI 도구를 쓰고 있다(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 2025). 하지만 대부분 채용 서류 스크리닝이나 챗봇 수준이다. ‘에이전트가 HR 워크플로를 직접 실행하는’ 단계와는 거리가 있다.
아시아 태평양 HR SaaS 시장은 2026~2031년 연평균 13.57% 성장이 전망된다(모르도르 인텔리전스). 성장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도구에 투자할 것인가다.
한국 노동법 맥락에서 특히 주의할 부분이 있다. AI 에이전트가 인사 결정(평가, 배치, 해고)에 개입하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정당한 이유’ 요건과 충돌할 수 있다. 에이전트가 추천한 저성과자 목록을 그대로 인사위원회에 올린다면, 그 ‘추천’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명 불가능한 알고리즘에 기반한 인사 조치는 부당해고 분쟁에서 약점이 된다.
또 하나. 좌석 기반 과금에서 소비 기반으로 전환되면 HR팀의 예산 관리 방식도 달라진다. 연간 고정비로 잡던 HR시스템 비용이 월별 변동비가 되면, 인사 기획 부서가 IT 지출을 직접 모니터링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건 기존에 없던 역할이다.
AI·도구로 측정/자동화 가능한 부분
- HR SaaS 라이선스 사용률 대시보드 — 좌석당 실제 로그인 빈도·기능 활용도를 측정해 ‘유령 좌석’을 식별. Workday, 시프티 등 API 로그 연동으로 자동 집계 가능
- 오프보딩 프로세스 자동화 — 퇴직 결정 → 계정 비활성화 → 장비 회수 → 보안 체크리스트를 에이전트 워크플로로 구축 (코히시티 사례처럼 2일 내 구현 가능)
- AI 에이전트 실행 로그 아카이빙 — 에이전트가 수행한 인사 관련 의사결정(배치 추천, 평가 점수 산출 등)의 근거를 자동 저장해 부당해고 분쟁 대비
- HR 시스템 비용 변동 추적 — 소비 기반 과금 전환 시 월별 크레딧 사용량·기능별 소비 패턴을 자동 리포팅해 예산 이탈 조기 감지
- 에이전트 도입 성숙도 자가진단 — 현재 HR 시스템의 API 개방도, 데이터 표준화 수준, 에이전트 연결 가능 영역을 체크리스트로 자동 평가
실무 시사점: HR SaaS 도구를 고를 때 ‘기능 목록’이 아니라 ‘API 개방도와 에이전트 연결성’을 첫 번째 기준으로 봐야 할 시점이다. 좌석을 사는 시대에서 실행(outcome)을 사는 시대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고, 한국 사업장은 노동법상 AI 의사결정의 설명 의무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일은 현재 HR 시스템의 에이전트 연동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AI에이전트#HRSaaS#사스포칼립스#인사시스템#HR트렌드#워크데이
참고 링크
- 삼성SDS, “사스포칼립스 이후, AI 에이전트 시대 SaaS 생존 전략” (2026)
- 전자신문, “AI 에이전트發 사스포칼립스는 기우…SaaS 넘어 SaS로 간다” (2026)
- Fortune, “Anthropic and OpenAI aren’t killing SaaS—but the incumbents can’t sleep easy” (2026)
- Workday Newsroom, “Workday Illuminate Expands with New AI Agents” (2025)
- HBR, “How McDonald’s Is Adapting to a Changing Economy” (2026)
- 월간 인재경영, “AI 시대의 HR 변화: 2026년, 기술이 아닌 사람이 답이다”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