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 반도체 단지 앞에 4만 명이 모였다. 삼성전자 노조는 5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다. 언론은 ’45조 성과급 요구’라는 숫자를 헤드라인에 내걸었고, 증시는 파업 리스크에 흔들렸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다. 회사가 SK하이닉스 수준, 심지어 그 이상의 금액을 역제안했는데도 노조는 거절했다. 이 분쟁이 ‘얼마’의 싸움이었다면 교섭 테이블은 이미 닫혔어야 했다. 삼성 반도체 성과급 분쟁의 진짜 쟁점은 금액이 아니라, 이익배분 공식의 ‘제도화’를 둘러싼 구조적 주도권 전환이다.
한 줄 요약: 삼성 노조가 거부한 건 ‘13%’라는 숫자가 아니라 “올해만 13%”라는 문법이다. 핵심 쟁점은 영업이익 연동 공식의 제도화이며, 통상임금 산입 가능성까지 열려 있어 합의가 성사되면 보상 체계 전반에 연쇄 파급한다.
한 통의 이메일이 시작한 균열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입사 4년 차 직원 한 명이 전 임직원에게 공개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단순했다. “성과급 산정에 쓰이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계산식을 공개해달라.” 경쟁사보다 성과급이 적다는 불만이 아니었다. 왜 이 금액인지를 납득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였다. 회사 인사팀은 “확인되지 않은 사항 유포는 사규 위반”이라고 대응했지만, 이 한 통의 이메일은 반도체 업계 보상 체계의 균열점을 정확히 찔렀다.
4년이 지난 2025년 9월,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확정하고 상한선을 완전히 폐지하는 합의에 도달했다. 대의원 투표 찬성률 95.4%. 이 합의의 핵심은 금액이 아니라 ‘공식’이었다. 영업이익이라는 객관적 지표에 고정 비율을 연동하고, 이를 10년간 유지한다는 약속. 성과급이 경영진의 재량에서 노사 간 계약으로 이동한 순간이었다. 업계 관계자의 평가가 이 전환을 압축한다. “성과급을 많이 주는 회사보다 성과급을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는 회사가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시대.”
13%를 제안받고도 테이블을 엎은 이유
삼성전자 사측의 대응은 금액 면에서 인색하지 않았다.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하자 사측은 13%를 역제안했다. SK하이닉스의 10%보다 3%포인트 높은 수치다. 거기에 반도체(DS) 부문이 국내 업계 1위를 달성하면 상한선을 초과하는 ‘특별 포상’까지 얹었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안이다.
13%
사측 역제안 — SK하이닉스 10%보다 +3%p
ZDNet Korea (2026)
15%
노조 요구안 — 영업이익 연동 공식화
MD투데이 (2026)
95.4%
SK하이닉스 합의 대의원 찬성률
머니투데이 (2025)
노조는 거절했다.
갈림길은 ‘일시적 포상’과 ‘영구적 제도’ 사이에 있었다. 사측 안은 경영 상황에 따라 재량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노조가 원하는 건 영업이익 대비 고정 비율이 제도로 확정되는 것이다. 같은 13%라도 “올해는 13%를 주겠다”와 “앞으로 13%를 공식으로 확정한다”는 전혀 다른 문장이다. 전자는 시혜(施惠)이고, 후자는 권리다. 노조가 교섭 중단을 선언한 건 2%포인트의 숫자 차이가 아니라 이 문법 차이 때문이었다.
‘공식’이 만드는 복리 효과
왜 노조는 금액보다 공식에 집착하는가. 여기에는 산술적 이유가 있다.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보자. 2025년 합의 당시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계산하면 1인당 약 1억 원이었다. 그런데 2026년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영업이익 전망치가 250조 원까지 치솟았고, 동일한 10% 공식을 적용하니 1인당 평균 성과급이 7억 원에 육박한다. PS(Profit Sharing) 지급률로 환산하면 기본급의 2,964%. 공식을 한 번 합의하면 업황이 좋아질 때 별도의 교섭 없이 보상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업황이 나빠지면 자동으로 줄어들기도 하지만, 노조 입장에서는 매년 경영진의 재량 앞에 줄 서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구조가 낫다.
삼성 노조가 15%를 들고 나온 맥락도 여기에 있다. 2026년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 300조 원에 15%를 적용하면 총 45조 원. 임직원 약 7만 4천 명으로 나누면 1인당 6억 원이 넘는다. 이 숫자가 매년 교섭 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의 부가가치가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항구적 채널이 된다. 반대로, 공식 없이 매년 ‘올해만 특별히’를 반복하면 업황이 꺾이는 해에 성과급은 경영 효율화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다. 노조가 공식에 집착하는 건 올해가 아니라 다음 불황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10% → 15% → 30%, 요구의 도미노
SK하이닉스의 합의는 한 회사의 노사 타결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가 15%를 요구한 직후,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했다. LG유플러스 노조도 영업이익의 30%를 들고 나왔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공식화하라’는 프레임 자체가 업종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실행 팁 — 업종별 비율 환산 영업이익률이 다른 업종 간 요구 비율을 직접 비교하면 오해가 생긴다. 반도체 30~40% × 15% ≈ 자동차 10% × 30%. 실효 부담률(매출 대비)로 환산한 뒤 비교해야 협상 포지션이 정렬된다.
이 도미노에는 구조적 가속기가 붙어 있다. SK하이닉스가 합의 이후 직장인 설문에서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18.9%)를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다. 성과급 공식화가 인재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 우위로 전환되었고, 삼성 노조 내부에서 SK하이닉스 이직 정보가 공유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성과급 구조가 곧 채용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한 회사의 합의는 경쟁사에게 동일한 구조를 강제하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패턴이 있다. 요구 비율이 10%에서 15%, 30%로 올라가는 건 단순한 욕심의 에스컬레이션이 아니다. 업종별 이익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영업이익률이 30~40%에 달하지만 자동차는 10% 안팎이다. 현대차가 순이익의 30%를 요구한 건 반도체의 10~15%와 실효 부담 면에서 비슷한 수준을 맞추려는 역산이다. 숫자가 다를 뿐 문법은 같다.
대법원이 열어둔 법적 뇌관
이 구조 변화의 배후에 2024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다.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요건을 전원일치로 폐기한 이 판결은 성과급 공식화 논의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던진다.
변경된 판례 법리에 따르면, 통상임금의 요건은 ‘소정근로의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 세 가지다. 기존에는 재직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에서 배제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조건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성과급의 경우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므로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원칙이 유지되지만, 결정적 단서가 있다 — “근무실적과 무관하게 최소한도의 일정액을 지급하기로 정한 경우, 그 금액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주의 — 통상임금 산입 리스크 영업이익 비율로 고정된 성과급이 개인 실적과 무관하게 정기·일률 지급되면 통상임금 산입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산입 시 연장·야간·휴일 수당과 퇴직금 산정 기초까지 연쇄 영향. 공식화 합의 전 통상임금성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영업이익의 15%’라는 공식은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긴장을 만든다. 개인 실적 평가와 무관하게 회사 전체 영업이익에 연동되는 구조라면, 이것은 ‘근무실적에 따른’ 성과급인가, 소정근로의 대가에 가까운 것인가. 공식이 확정되고 매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 산입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퇴직금 산정 기초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노조가 원하는 ‘공식화’가 실현될 경우, 사측은 성과급 액면 이상의 재무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생산라인이라는 궁극의 협상 카드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 시점을 5월 21일로 잡은 건 우연이 아니다. 2분기는 AI 서버용 HBM(고대역폭메모리) 양산이 집중되는 시기다. 업계 추산으로 파업 시 하루 손실액은 1조 원, 18일간 총 손실은 30조 원(약 200억 달러)에 이른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파업은 글로벌 AI 공급망에 직접적 충격을 줄 수 있다.
노조 위원장이 크레인 위에서 “공정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에 수 주가 걸리고, 수율(양품률) 회복에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파업 기간의 매출 손실이 아니라, 파업 이후의 수율 저하와 고객 이탈이다. AI 칩 납품 지연은 TSMC 등 경쟁사에게 고객을 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한번 빠진 공급 사슬의 자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 비대칭이 노조에게 전례 없는 교섭력을 부여하고 있다.
공식이 없는 시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삼성 반도체 성과급 분쟁을 노사 간 금액 다툼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SK하이닉스의 한 직원이 보낸 이메일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이익배분이 경영자의 재량에서 노사 간 계약 공식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삼성 노조가 더 많은 금액을 거부하면서까지 쟁취하려는 건 ‘올해의 보너스’가 아니라 ‘내년에도 반복될 공식’이다.
💡 실무 시사점 — 보상 협상 테이블에서 점검할 3가지:
① 시혜 vs 권리 구분. “올해 X%”와 “공식 X%”는 다른 문장. 합의서 문구가 일시 약정인지 영구 공식인지 명시.
② 통상임금 사전 검토. 영업이익 연동 + 정기·일률 지급 구조는 산입 리스크. 합의 전 임금구조 영향분석 필수.
③ 업종 횡단 파급. 한 합의는 동종·이종 업계로 확산. 인재 이탈/유입까지 연동되므로 단일 회사 의사결정으로 끝나지 않음.
#성과급공식화#통상임금산입#이익배분제도화#반도체노사
실무 현장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성과급을 영업이익 비율로 고정하면 통상임금 산입 리스크가 뒤따를 수 있다 — 2024년 대법원 판례 변경 이후 이 경로는 열려 있다. 한 회사의 성과급 합의는 동종·이종 업계 모두에 연쇄 파급한다 — SK하이닉스에서 삼성, 현대차, LG유플러스로 이어지는 도미노가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단순히 노무 이슈가 아니라 기업의 자본배분 의사결정, 인재 확보 전략,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까지 관통하는 복합 변수다.
보상의 기준은 이미 바뀌고 있다. 직원들은 더 이상 “올해는 이만큼 주겠다”는 약속에 만족하지 않는다. 계산식을 요구하고, 공식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하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생산라인을 멈추겠다고 선언한다. 이 흐름을 ‘과도한 요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반도체 AI 호황이라는 전례 없는 이익 환경에서 노동의 몫을 구조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구조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인데, 그 답은 다음 불황이 올 때 드러날 것이다.
참고 링크
- People Matters, “40,000 Samsung workers protest pay, threaten strike as AI demand boosts profits” (2026)
- 한국경제, “‘상소문’ 이후 확 바뀐 SK하이닉스 성과급…삼성전자는 ‘고심’” (2026)
- ZDNet Korea, “하루 1조씩 손해…’성과급 5.4억’ 제안 받은 삼성전자 노조, 파업 시계 ‘째깍’” (2026)
- MD투데이, “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성과급 경쟁…삼성 15%·현대차 순이익 30%로 번진다” (2026)
-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3다302838 전원합의체 판결 (통상임금)” (2024)
- 머니투데이, “‘최대실적’ SK하이닉스, 상한선 없이 ‘이익 10%’ 성과급으로 준다” (2025)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