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미국 노동시장에서 여성 취업자 수가 남성을 20만 명 넘어섰다. 역사상 세 번째다. 첫 번째는 2008년 금융위기, 두 번째는 코로나 직전이었고, 세 번째가 지금이다. 남성 취업자는 1년 사이 14만 2천 명 줄었고, 20~24세 청년 남성 실업률은 8.3%로 경기침체 수준에 근접했다. 미국 언론은 이 현상에 ‘He-cession(히세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업이 바뀌니 남성 일자리가 줄었다는 설명이 주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을 비껴간다. He-cession의 진짜 벽은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일’로 코딩된 직종의 문을 자발적으로 열지 않는다는 데 있다 — 그리고 그 문을 연 소수의 남성은 오히려 더 빨리 올라간다.
한 줄 요약: He-cession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직업 정체성 문제다 — 남성이 기피하는 직종에 진입한 남성은 유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빠르게 승진한다는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20만 명
미국 여성 취업자, 남성 대비 초과 규모
Axios / BLS (2026.02)
8.3%
미국 20~24세 남성 실업률 — 경기침체 수준
Manhattan Institute (2026.07)
−10.6만 명
한국 건설업 취업자 13개월 연속 감소
통계청 고용동향 (2025.05)
+23.3만 명
한국 보건·복지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
통계청 고용동향 (2025.05)
80%
미국 헬스케어 종사자 중 여성 비율
AHA Workforce Scan (2026)
한국도 같은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미국 이야기라고 넘기기엔 한국 데이터가 너무 닮았다. 한국 남성 고용률은 2022년 71.5%에서 2025년 70.6%로 내려갔고, 같은 기간 여성 고용률은 52.9%에서 55.3%로 올라갔다. 방향이 정확히 반대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여성 고용 상황이 남성보다 나았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평가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처음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건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이민 단속 강화가 남성 노동력을 줄였다는 분석이 붙는다. 이민자 중 남성 비율이 높으니, 강제 퇴거와 비자 축소가 남성 고용에 직격탄이 됐다는 논리다. 일부 맞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변수가 없다. 이민 정책 변화 없이, 산업 구조만으로 같은 패턴이 만들어졌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한·미 양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남성 고용 위축은 특정 정책의 부작용이 아니라, 선진국 노동시장이 공유하는 구조적 전환의 징후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일자리가 아니라, 옮겨간 일자리
한국 데이터를 산업별로 쪼개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2025년 5월 기준, 제조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6만 7천 명 감소해 11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건설업은 10만 6천 명 줄어 13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건설업의 전체 취업자 비중은 7.3%에서 6.7%로 떨어졌고, 2025년 1분기 건설업 폐업 공고는 160건으로 2011년 이후 14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반대편은 생기가 다르다. 보건·복지 서비스업은 23만 3천 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은 11만 7천 명, 금융·보험업은 7만 2천 명 늘었다.
일자리 총량은 오히려 늘었다. 전체 취업자가 전년 대비 24만 5천 명 증가했고, 15~64세 고용률은 70.5%로 OECD 기준 역대 최고치다. 줄어든 건 남성이 밀집한 산업이고, 늘어난 건 여성이 밀집한 산업이다. 일자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장소를 옮긴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남성에게 ‘금지 구역’이 된 직종들
미국남성소년연구소(AIBM)를 이끄는 리처드 리브스는 이 현상을 “남성 노동자에게 ‘금지 구역(no-go zones)’이 너무 많다”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미국 헬스케어 종사자의 80%가 여성이다. 언어치료사의 95%가 여성이다. 이 직종들은 급여도 나쁘지 않고, 수요도 폭발하고 있으며, 대졸 학위 없이도 진입할 수 있는 경로가 열려 있다. 그런데 남성은 오지 않는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그러면 남성도 간호사를 하면 되잖아”라는 반응이 떠오를 수 있다. 상식적인 답이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 지배 직종을 기피하는 이유는 급여나 조건이 아니다.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건, 해당 직무에 요구되는 기술이 ‘여성적’으로 인식되는 것 — 돌봄, 감정 노동, 대인 소통 — 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소수의 남성이 보여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일 자체가 ‘남성답지 않다’고 코딩되어 있어서 안 간다.
사례 — 미국 간호 직종 2026년 미국간호사협회(ANA)는 남성건강을 간호 전문 분야로 공식 인정했다. 남성 간호사 비율을 높이기 위한 상징적 조치다. 그러나 현재 미국 간호사 중 남성은 약 12%에 불과하고, 10년간 비율 변화는 미미하다. 제도를 만들어도 정체성의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 서비스업이 23만 명 넘게 고용을 늘렸지만, 그 자리를 채운 건 대부분 여성이다. 남성 초대졸 제조업 취업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통계와, 남성 ‘취업 무경험 실업자’가 전년 대비 10% 늘었다는 데이터를 나란히 놓으면, 제조업을 떠난 남성이 서비스업으로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실업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유리 에스컬레이터 — 문을 연 남성은 더 빨리 올라간다
He-cession 분석들이 공통적으로 놓치는 데이터가 하나 있다. 여성 지배 직종에 실제로 진입한 남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회학자 크리스틴 윌리엄스가 명명한 ‘유리 에스컬레이터(glass escalator)’ 현상이 이를 설명한다. 간호, 교육, 사회복지 등 여성이 다수인 직종에 진입한 남성은 같은 직종의 여성보다 더 빠르게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건 단순한 학술 가설이 아니다. 남성 간호사가 여성 간호사보다 관리직·감독직에 오르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실증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성 지배 직종의 조직 문화 자체가 남성 진입자를 희소 자원으로 인식하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승진 경로에 올려놓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데이터가 He-cession 담론에서 가장 불편한 진실이라고 본다. 남성 고용 위기를 ‘산업 구조 변화’로 설명하면 해법은 재교육·직업훈련이 된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실제 장벽이 정체성이라면, 재교육 프로그램에 남성이 등록하지 않는 문제가 먼저 생긴다. 그리고 정체성의 벽 너머에는 오히려 가속 장치(유리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장벽의 비합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금 역설 — 왜 여성 직종의 급여가 낮은가
“남성이 서비스업에 안 가는 건 돈이 적어서”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지배 직종의 평균 급여는 남성 지배 직종보다 낮다. Indeed의 경제연구 디렉터 로라 울리히는 “고용이 여성 쪽으로 이동하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전체 임금이 하락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경고한다. 이 지적은 맞다. 그러나 인과 방향에 함정이 있다.
돌봄·교육·사회복지 직종의 급여가 낮은 건, 그 일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여성이 해왔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같은 수준의 교육·경험·책임을 요구하는 직무라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 급여 수준이 내려가고 남성 비율이 높아지면 올라간다는 실증 결과가 반복된다. 이걸 뒤집어 읽으면, 남성이 대거 진입하는 것 자체가 해당 직종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유리 에스컬레이터가 개인 수준에서 작동한다면, 이 임금 효과는 직종 수준에서 작동하는 셈이다.
건설업 수주가 전년 대비 14.9% 줄고, 건설업 등록 공고가 사상 최저(131건)를 기록하는 동안, 보건·복지 서비스 수요는 고령화와 함께 구조적으로 증가한다. 가격 시그널이 아직 충분히 조정되지 않은 것이지, 방향은 정해져 있다. 핵심이다 — 임금이 낮아서 남성이 안 가는 게 아니라, 남성이 안 가서 임금이 낮은 상태가 유지되는 순환 구조가 있다.
15~29세 마이너스 15만 — 청년 남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국의 15~29세 취업자는 15만 명 줄었다. 고용률은 46.2%로 전년 대비 0.7%p 하락했다. 같은 시점에 60세 이상 취업자는 37만 명 늘어 사상 최초로 700만 명을 넘었다. 노동시장의 세대 교체가 역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흐름은 같다. 대졸 남성의 실업률이 5.3%에 달하고, 맨해튼 연구소는 “대학 졸업이 더 이상 취업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남성에게 그렇다. 대학 학위의 노동시장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건 양성 공통이지만, 그 타격이 남성에게 더 집중되는 이유는 다시 산업 구조로 돌아온다. 학위 없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전통적 경로 — 제조업, 건설업 — 가 축소되고, 학위 없이도 진입 가능한 새 경로 — 보건, 돌봄 — 에는 정체성 장벽이 버티고 있다.
이건 좀 불편한 데이터다 한국에서 ‘취업 무경험 실업자’는 남성이 전년 대비 10% 증가(2만 4천 명)한 반면, 여성은 6% 감소(1만 6천 명)했다. 한 번도 취업하지 않은 채 실업 상태인 남성이 늘고 있다. 이 지표는 단순 실업률보다 노동시장 진입 자체의 실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신호다.
청년 남성의 노동시장 이탈이 장기화되면, 경제적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업이 사회적 정체성의 핵심 축인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청년 남성의 증가는 사회 전반의 불안 요인이 된다. 미국에서 He-cession이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체성의 벽 앞에서 HR이 할 수 있는 것
He-cession에 대한 지배적 처방은 ‘재교육’과 ‘직업훈련’이다. 남성을 성장 산업으로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필요한 정책이지만, 정체성 장벽을 건드리지 않는 재교육은 등록률 자체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남성 요양보호사 비율, 남성 사회복지사 비율을 떠올려보면, 제도가 열려 있어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현실이 확인된다.
기업 HR 입장에서 이 구조적 전환은 두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성장 직종의 채용 파이프라인에서 성별 편향을 의식적으로 점검하는 것. 보건·복지·교육 분야에서 남성 지원자를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건 다양성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인력난을 해소하는 실용적 전략이다. 둘째, 사내 직무 전환 프로그램에서 ‘여성적’으로 코딩된 역량 — 대인 소통, 감정 관리, 돌봄 — 을 중성적 언어로 재정의하는 것. 직무 기술서에 ‘공감 능력’이라고 쓰는 대신 ‘이해관계자 조율’이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남성 지원률이 바뀐다는 연구가 있다.
유리 에스컬레이터 현상이 시사하는 건, 장벽을 넘은 개인에게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장벽을 넘게 만드는 설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교육기관의 전공 안내, 공공고용서비스의 직종 추천, 기업의 채용 메시지 — 이 모든 접점에서 직종의 성별 코딩을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성장 직종 채용 공고의 언어 점검. ‘돌봄’, ‘공감’, ‘세심한’ 같은 표현이 남성 지원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지 확인하고, 중성적 직무 역량 언어로 전환한다.
② 사내 직무 전환 프로그램에 성별 비율 목표 설정. 특히 제조·건설 → 서비스 직무로의 전환 경로를 설계할 때, 남성 참여율을 별도 지표로 추적한다.
③ ‘유리 에스컬레이터’ 리스크 인지. 남성이 여성 지배 직종에 진입할 때 무의식적으로 관리직에 올리는 관행이 없는지 점검 — 다양성 확보가 또 다른 유리천장을 만들지 않도록 승진 기준을 투명화한다.
#He-cession#남성고용위기#직업정체성#유리에스컬레이터#직무전환
참고 링크
- Axios, “Women now outnumber men in the workforce. Here’s why.” (2026)
- Manhattan Institute, “The Jobs Market Is Showing Signs of a ‘He-Cession’” (2026)
- WSJ, “He-cession? A Changing U.S. Job Market Is Leaning Against Men” (2026)
- 데이터솜, “제조·건설 일자리 감소 지속…서비스업이 고용 견인” (2025)
- 브릿지경제, “건설업 고용 15만명 급감…침체된 건설경기, 일자리까지 삼켰다” (2025)
- 한국노동연구원, “2025년 노동시장 평가와 2026년 노동시장 전망” (2025)
- 서울신문, “시험 보는 남자·일터 찾는 여자… 성별 고용 격차 줄었다” (2026)
- NPR, “Women are getting most of the new jobs. What’s going on with men?”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