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실무 문서 가이드

0 / 0 섹션 완료

AI가 없애는 건 일자리가 아니라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다

2026년 7월, 한국의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10만 8천 명 늘었다. 반도체 산업은 AI 인프라 수요에 힘입어 고용이 5.1% 증가했고, 정보통신업도 1.9% 올랐다. 숫자만 보면 AI가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달, 15~29세 청년 취업자는 19만 1천 명이 줄었다. 전체 고용은 늘었는데 청년만 빠졌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경력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을 없애고 있다 — AI 호황 산업조차 신입이 아닌 경력직만 흡수하면서, 청년은 ‘배워서 올라가는’ 경로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반도체는 호황인데, 20대는 왜 빠지나

고용정보원이 8월 19일 발표한 9개 주력 제조업종 전망을 보면, 하반기에 고용이 순증하는 업종은 반도체(+8천 명)와 조선(+3천 명) 두 곳뿐이다. 반도체의 성장 동인은 명확하다. 글로벌 AI 인프라 수요 확대, 데이터센터 투자, 고부가 메모리 시장 호황. 자동차 내수 전망도 +3.9%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머지 7개 업종 — 전자·디스플레이(-0.1%), 철강(-0.3%), 자동차(-0.5%), 석유·화학(-0.6%), 그리고 섬유(-3.5%) — 은 고용이 제자리이거나 줄어든다.

문제는 이 구도를 통계청 7월 고용동향과 겹쳐 놓으면 드러난다. 제조업 전체에서 6만 8천 명이 줄었고, 건설업에서 5만 7천 명이 빠졌다. 그 감소분의 상당 부분이 20~24세 연령대에 집중돼 있다 — 이 구간의 취업자만 12만 4천 명 감소, 고용률은 3.2%p 급락했다. 반도체 한 업종이 8천 명을 더 뽑아도, 제조업 전체에서 6만 8천 명이 빠지는 상황에서는 산술적으로도 메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의 비대칭이야말로 ‘AI가 고용을 창출한다’는 낙관론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본다.

+5.1%

반도체 고용 증가율 AI 인프라 수요 견인

고용정보원 — 9개 주력 업종 전망 (2026)

-19.1만 명

15~29세 청년 취업자 감소 전년동월 대비

통계청 — 2026년 7월 고용동향

-3.2%p

20~24세 고용률 하락폭 전 연령대 최대

통계청 — 2026년 7월 고용동향

‘변환’이라는 말의 실체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필리핀 보고서에서 “AI는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변환한다”고 결론 내렸다. 필리핀 고용의 25% 이상인 1,270만 개 일자리가 생성형 AI에 노출돼 있지만, 대부분은 직무 내용이 바뀌는 것이지 직무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ILO의 글로벌 평가도 비슷한 톤이다. 전 세계적으로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일자리는 전체의 3.3%에 불과하고, 4명 중 1명 정도가 ‘어느 정도 노출’된 상태라는 것.

솔직히 이 ‘변환’이라는 표현은 절반만 맞다. 변환이 일어나는 건 사실인데, 그 변환이 모든 연령에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분석이 이걸 정면으로 보여준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4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8만 5천 개 줄었는데, 이 중 94.0%인 26만 8천 개가 AI 노출도 높은 업종에서 사라졌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고, 이 중 75.2%가 역시 AI 노출도 높은 업종에서 나왔다. 같은 업종, 같은 기술 변화인데 결과가 정반대다.

패턴 — AI 노출과 연령별 비대칭 한국은행이 분석한 AI 노출도 높은 업종에서 청년 일자리 26만 8천 개가 사라진 반면, 50대 일자리는 17만 3천 개가 늘었다. AI가 대체하는 건 ‘직무’가 아니라 ‘경험이 적은 사람의 직무’다.

왜 이런 비대칭이 생기나. 한국은행 고용연구팀장의 설명은 간결하다. “AI는 매뉴얼에 있는 업무를 주로 하는데, 이건 청년층이 담당하던 일이다. 시니어의 업무는 조직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특화된 것이라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자료 조사, 기초 데이터 분석, 문서 초안 작성, 단순 코딩 — 신입사원의 일이 곧 AI의 일이 된 것이다.

‘경험 인플레이션’이 진입 장벽을 높인다

ILO가 올해 8월 발표한 「글로벌 청년 고용 동향 2026」 보고서는 이 현상에 정확한 이름을 붙였다 — ‘경험 인플레이션(experience inflation)’, 또는 ‘시니어화(seniorization)’.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종일수록 신입 채용 공고에 경력직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입 자리는 남아 있지만, 그 자리에 붙은 요구 조건이 경력 3~5년차 수준으로 올라가 버린 것.

이 보고서가 인용한 연구들의 숫자는 상당히 날카롭다. 미국에서 AI 고노출 분야의 22~25세 고용은 16% 상대적 감소(Brynjolfsson et al., 2025)했고, 영국에서는 AI 노출 기업의 전체 인력이 4.5% 줄었는데 그 감소가 주니어 포지션에 집중돼 있었다(Klein Teeselink, 2025). 한국 500대 기업의 데이터도 일치한다. 2023년과 2025년 사이 신규 채용은 10만 9천 명에서 9만 3천 명으로 15.3% 줄었고, 30세 이하 고용인원은 13.8% 감소한 반면 50세 이상은 4.8% 늘었다.

-16%

미국 AI 고노출 분야 22~25세 상대적 고용 감소

Brynjolfsson et al. (2025)

-15.3%

한국 500대 기업 신규 채용 감소 (2023→2025)

리더스인덱스 — 132개사 분석

6.1%

글로벌 청년 일자리 중 AI 고노출 비중

ILO — 글로벌 청년 고용 동향 2026

“키워 쓸 바엔 안 뽑는다”는 합리적 선택인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논리는 분명하다. 신입 1명을 현업에 투입하기까지 평균 20개월, 직간접 비용 6천만 원 이상이 든다. 사업 변화 속도가 빨라진 환경에서 “키워 쓸 바엔 안 뽑는다”는 판단은 단기적으로 합리적이다. AI가 신입의 기초 업무를 대신하고, 기존 시니어 인력을 재배치하면 당장의 경영 차질은 없다.

하지만 이건 좀 아쉬운 판단이다. 헤드헌팅 업계에서 나오는 경고가 있다. “지금 당장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신입을 키우지 않으면, 5~10년 뒤 특정 산업에서 핵심 직무의 경력자 공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즉시 전력만 찾으면 그 즉시 전력을 누가 훈련시킬 것인가. 이건 개별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 산업 전체의 비합리적 결과를 만드는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다.

예외는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228명이던 청년 신규 채용을 2025년 2,560명으로 10배 이상 늘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205명에서 484명으로 확대했다. 반도체와 바이오 — AI 인프라의 물리적 기반을 만드는 산업과 AI가 아직 침투하기 어려운 실험·제조 중심 산업에서만 청년 채용이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 이 thesis를 오히려 강화한다. AI의 수혜를 직접 받는 소프트웨어·서비스 분야가 아니라, AI 바깥에서 청년이 살아남고 있는 셈이다.

사례 — SK하이닉스 AI 메모리 반도체 호황 속에 청년 채용을 228명 → 2,560명으로 확대(2023→2025). 다만 이는 AI 인프라의 물리적 제조 수요지, AI가 직접 대체하는 지식노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스가 보여주는 10년 뒤의 풍경

이 구조가 고착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OECD가 올해 그리스 청년의 경제적 자립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청년 고용률은 36%로 OECD 평균 55%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더 주목할 수치는 대졸 실업률이다. 25~34세 대졸자의 실업률이 12.3%로 OECD 최고, 평균의 2.4배에 달한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

결과는 명확하다. 25~34세의 56.3%가 부모와 동거 — EU 평균의 거의 2배다. 청년이 꼽은 최대 우려 1위는 ‘저임금'(41.1%), 2위가 ‘실업'(39.6%)이다. GDP가 2.1% 성장하고 전체 실업률이 개선돼도 청년에게는 체감이 안 된다.

한국의 현재 상황이 그리스와 닮아가고 있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통계청 데이터에서 대졸 이상 실업자가 18.8% 급증한 것, 청년 실업률이 6.8%로 전체 실업률 2.6%의 2.6배인 것, 이 구조적 패턴이 그리스 궤적의 초입과 겹친다. 그리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이 문제를 방치했고, 그 결과 한 세대가 경제적 독립 시기를 놓쳤다.

12.3%

그리스 25~34세 대졸 실업률 — OECD 최고

OECD — 그리스 청년 경제적 자립 보고서 (2026)

56.3%

그리스 25~34세 부모 동거 비율

OECD — 그리스 청년 경제적 자립 보고서 (2026)

+18.8%

한국 대졸 이상 실업자 증가율

통계청 — 2026년 7월 고용동향

글로벌 청년 실업의 역전 — ‘일자리 양’이 아니라 ‘진입 경로’의 문제

ILO 보고서의 글로벌 데이터를 보면 더 큰 그림이 보인다. 2025년 전 세계 청년 실업자는 6,700만 명, 실업률 12.4%. 여기에 교육도 훈련도 취업도 아닌 상태(NEET)인 청년이 2억 5,700만 명에 달한다 — 전 세계 청년 5명 중 1명이다. 2023년에 역대 최저였던 청년 실업률이 다시 반등했고, 11개 권역 중 8곳에서, 105개국에서 청년 실업률이 올랐다.

핵심이다 — 이건 전체 고용 악화와 다른 현상이다. 같은 기간 성인 실업률은 오히려 3.7%에서 3.6%로 개선됐다. 청년 대 성인 실업률 비율이 3.43배로 벌어졌다는 건, 경기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뜻이다. 특히 중간숙련 일자리(사무직, 서비스·판매, 기능직)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 동아시아에서 중간숙련 청년 고용은 -24.2% 변화를 기록했다. 청년이 첫 직장으로 삼던 바로 그 자리들이 공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ILO 보고서가 인용한 또 하나의 불안한 수치. 구직 중인 청년 실업자 중 첫 직장을 구하는 신규 진입자 비율이 남아시아에서 79.6%까지 올랐다 — 10년 전 64.8%에서. 문을 한번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밖에 서 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AI 충격 시나리오 ILO는 AI 고노출 청년 일자리의 10%만 실제로 사라져도 전 세계 560만 명의 청년이 실업·직종 전환·노동시장 이탈에 직면한다고 추산했다. 동아시아 150만 명, 북미 62만 명, 유럽 59만 명 순이다.

정책은 왜 ‘교육 투자’에서 멈추면 안 되나

일반적 처방은 ‘교육’과 ‘재교육’이다. AI 시대에 맞는 역량을 키우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논리.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OECD 그리스 보고서가 보여주듯, 그리스는 25~34세 중 고등교육 미이수 비율을 13%에서 7%로 절반 가까이 줄였지만 대졸 실업률은 OECD 최고다. 한국의 대졸 이상 실업자가 18.8% 급증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의 양이 아니라 교육과 일터 사이의 경로가 문제인 것이다.

ILO 필리핀 보고서의 한 문장이 이걸 정확하게 짚는다 — “문제는 인재가 아니라 조율(coordination)이다.” 필리핀의 인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인재를 산업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경로가 부재하다는 진단.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경협 조사에서 청년들이 꼽은 정책 1순위가 ‘청년 신규채용 기업 지원 강화'(23.8%)이고, 거의 동률인 2순위가 ‘신입·초급 직무 경험 기회 확대'(23.7%)였다는 건 시사적이다. 청년들 스스로가 역량이 아니라 기회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현업에서 나오는 제안은 더 구체적이다. 통합고용세액공제를 ‘채용 보조’가 아니라 ‘육성 보조금’으로 전환하자는 것. 대학 재학 중 창업, 산학 프로젝트, 장기 인턴을 통해 학생이 현업 경험을 쌓도록 하고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것. 핵심은, 신입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첫 번째 칸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AI가 그 칸을 없앴으니, 정책이 그 칸을 다시 놓아야 한다.

한 줄 요약: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을 없애고 있다 — AI 호황 산업조차 신입이 아닌 경력직만 흡수하면서, 청년은 ‘배워서 올라가는’ 경로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신입 채용 공고의 ‘경험 인플레이션’ 감사. AI 노출 직무의 신입 채용 요건이 실질적으로 경력 3~5년차 수준으로 올라가 있지 않은지 확인하라. ILO가 명명한 ‘seniorization’이 자사에서도 진행 중인지 점검하는 것이 첫 단계다.

② ‘교육 비용’ 대신 ‘공백 비용’으로 프레임 전환. 신입 1명에 20개월·6천만 원이 든다는 계산은 맞다. 하지만 5~10년 뒤 중간관리자 풀이 고갈됐을 때 경력직 쟁탈전에 드는 비용과 비교해야 한다. 개별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 산업 전체의 인재 공백을 만든다는 구성의 오류를 인사 전략에 반영하라.

③ AI 바깥의 직무 경험 경로 설계. SK하이닉스·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AI가 직접 대체하기 어려운 물리적 제조·실험·현장 직무에서 청년이 경력의 첫 단계를 밟을 수 있는 경로를 사내에 남겨두라. AI가 할 수 없는 일에서 시작해 AI와 협업하는 역량으로 성장하는 커리어 래더가 필요하다.

#경험인플레이션 #AI청년고용 #경력사다리 #신입채용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ON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