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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명에게 물었다 — 2026년 직원이 진짜 원하는 것

“당신은 지금 직장에서 번영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직장인이 2024년에는 66%였다. 2026년, 같은 질문. 답은 44%로 쪼그라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낮은 수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Mercer)가 전 세계 C-suite 임원, HR 리더, 투자자, 직원 약 12,000명을 대상으로 2025년 9~10월 조사를 실시하고, 2026년 2월 발표한 ‘Global Talent Trends 2026’ 리포트가 그 답을 담고 있다. 16개국 16개 산업을 아우르는 이 보고서의 부제는 “인간과 기계의 방정식을 풀어라(Solving the Human–Machine Equation)”. 올해로 11년째 이어지는 이 시리즈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AI를 도입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고,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번아웃이 팬데믹 수준을 뚫었다 — 44%의 의미

직장에서 ‘번영(thriving)’하고 있다는 응답이 44%. 이 숫자가 왜 충격적이냐면, 코로나로 전 세계가 멈춰 선 2020~2021년에도 이보다는 높았기 때문이다. 2024년 66%에서 2026년 44%로, 불과 2년 만에 22%p가 날아갔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할 수 있다. 유아이패스(UiPath)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93%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34%는 지난 6개월 동안 ‘매우 강한 수준’의 번아웃을 겪었다. 특히 Z세대의 80%가 심각한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은 세대별 대응이 시급하다는 신호다.

실무적으로 이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는 사업주에게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도 정신건강 침해를 괴롭힘의 한 유형으로 본다. 번아웃이 조직 문화의 구조적 산물이라면, 이건 복지 이슈가 아니라 컴플라이언스 이슈가 되는 셈이다.

— 필자 코멘트: 번아웃 수치가 팬데믹 이하로 떨어졌다는 건, 지금의 불안이 외부 위기가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훨씬 더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AI 불안, 2년 만에 28%에서 40%로 — FOBO의 시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직원이 2024년 28%에서 2026년 40%로 급등했다. 머서는 이 현상에 ‘FOBO(Fear of Becoming Obsolete)’, 즉 ‘쓸모없어질 것에 대한 공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숫자를 더 뜯어보자. 직원의 53%는 자신에게 미래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동시에 63%는 연봉 10% 인상보다 AI·디지털 업스킬링 기회를 원한다고 답했다. 돈보다 생존 역량을 택한 것이다.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약 50%가 2026년 고용 환경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주요 요인으로 ‘산업·시장 변화(51.6%)’, ‘AI 및 자동화 기술 확산(34.1%)’, ‘조직 구조 개편(33.1%)’을 꼽았다.

근로기준법상 해고(정리해고 포함)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 회피 노력과 합리적 기준에 의한 대상자 선정이 필수다(제24조). AI 도입을 이유로 한 인력 감축도 이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직무 재설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배치전환이 이뤄지는 경우인데, 이때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 필자 코멘트: 63%가 연봉 인상 대신 학습 기회를 원한다는 건, 직원들이 이미 “지금 당장의 돈”보다 “내일의 고용 가능성”을 더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훈련비를 ‘비용’이 아니라 ‘리텐션 투자’로 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리더십 자신감은 곤두박질 — 51%만 “준비됐다”

C-suite 임원 중 “우리 조직이 인간-기계 시대에 잘 준비되어 있다”고 답한 비율이 2024년 65%에서 2026년 51%로 떨어졌다. AI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면서도 자신감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유가 있다. 리더의 75%가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사의 디지털 민첩성(agility)을 높게 평가한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직원들은 이 간극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다. 62%는 “리더들이 AI의 감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한다”고 답했다. 반면 HR 리더 중 디지털 전략 수립 시 감정적 임팩트를 고려한다고 한 비율은 고작 19%. 그러니까 직원 10명 중 6명은 “윗분들이 우리 심정을 모른다”고 느끼는데, 실제로 HR의 80% 이상이 그 감정을 전략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 필자 코멘트: 리더의 자신감이 떨어진 건 사실 건강한 신호일 수 있다. 무턱대고 “AI가 다 해결해줄 거야”라던 2024년보다,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2026년이 오히려 나은 출발점이다. 다만 ‘직시’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아직 없다는 게 문제다.

98%가 조직을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 진짜 실행되는 건 얼마나?

경영진의 98%가 향후 2년 이내에 조직 설계(organizational design) 변경을 계획하고 있다. 거의 전원이다. 그리고 65%는 AI로 인해 전체 인력의 11~30%를 재배치(redeploy)하거나 재교육(reskill)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C-suite가 꼽은 최우선 ROI 과제는 “AI와 자동화를 접목한 업무 재설계(63%)”였다. 반면 HR의 최우선 과제는 “우수 인재 유치·유지를 위한 직원 경험(EX) 향상”이었다. 경영진은 기계 쪽을 보고, HR은 사람 쪽을 보고 있다. 이 시선의 어긋남이 조직 변혁의 가장 큰 병목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에서 조직개편은 늘 있어왔지만, AI 기반 직무 재설계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에 3명이 하던 일을 AI가 보조하면서 1.5명으로 줄이는 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와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사이에서 법적 리스크가 커진다. 특히 “AI가 대체할 수 있는 업무”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업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직 판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실무자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투자자가 보는 세상 — “사람+AI” 조합이 경쟁력이다

투자자의 72%는 인간과 AI 역량을 통합하는 기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고 답했다. 77%는 직원 AI 교육에 투자하는 기업에 더 투자하겠다고 했다. 83%는 적응력 있고 회복탄력성 높은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 위기 시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봤다.

이 숫자들이 중요한 이유. ESG에 이어 이제는 ‘인재 전략’이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는 신호다. AI 기술 자체보다 “AI를 어떻게 사람과 함께 쓰느냐”가 기업 가치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한국 상장사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인적자본(Human Capital) 지표를 포함하는 추세와 맞물린다. 교육훈련 투자, 이직률, 직원 만족도 같은 지표가 더 이상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투자 유치의 필수 요소가 되는 셈이다.

— 필자 코멘트: 투자자의 77%가 “AI 교육에 투자하는 기업에 돈을 넣겠다”고 한 건 꽤 강력한 시그널이다. 교육훈련비가 비용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라는 인식이 자본시장에서 먼저 형성되고 있다.

임금은 3.5% 인상 —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머서의 별도 보상 조사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기업의 총 급여 인상 예산은 3.5%(성과급 포함 기준)다. 성과급 제외 순수 연봉 인상률(merit increase)은 3.2%. 2025년 실적치와 동일하다. 사실상 동결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보상의 ‘양’보다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숙련 기술직(skilled trades)과 현장직은 인력 부족으로 프리미엄 임금이 유지되고, 디지털 인재에게는 차별화된 보상 패키지가 제공된다. 한편 사무직 중간 계층의 임금 인상은 정체되는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머서의 ‘Inside Employees’ Minds’ 조사에서도 40% 이상의 직원이 “급여가 공개되지 않은 채용 공고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도 2025년 이후 채용공고 시 급여 범위 공개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와 일맥상통한다.

실무적으로 주목할 건 임금 투명성이다. 유럽연합(EU)의 임금투명성지침(Pay Transparency Directive)이 2026년 시행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제8조)과 맞물려, 보상 체계의 공정성이 법적 리스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HR의 미래 — 사람과 디지털 에이전트를 함께 관리하는 시대

C-suite의 82%가 “HR의 미래는 인간 인재와 디지털 에이전트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건 꽤 혁명적인 시사점이다. 지금까지 HR은 ‘사람’만 관리했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의 성과도 HR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54%의 C-suite가 인재 부족(talent scarcity)을 가장 큰 과제로 꼽았고, 59%의 HR 리더는 핵심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인재 확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AI 시대에 더 치열해졌다.

한국에서 이 변화는 직업안정법, 파견법과도 맞닿아 있다. AI 에이전트가 특정 업무를 수행할 때, 이것이 ‘근로자’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생산성 도구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가 아직 불분명하다. 공공부문에서는 이미 AI 도입 시 노조와의 사전 협의를 요구하는 단체협약이 등장하고 있다.

— 필자 코멘트: “HR이 AI 에이전트까지 관리한다”는 발상은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챗봇 응대 품질, AI 추천 시스템의 공정성 등을 HR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생각보다 먼 미래가 아니다.

한국 실무자에게 남는 질문

이 리포트의 숫자들을 한국 맥락으로 가져오면, 몇 가지 실무적 과제가 선명해진다.

업스킬링 의무화 검토. 직원의 63%가 임금 인상보다 교육을 원한다면, 기업은 직업능력개발법에 따른 사업주 훈련을 적극 활용할 유인이 있다. 고용보험 직업능력개발사업에서 훈련비의 상당 부분을 환급받을 수 있으니, 비용 부담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AI 도입 시 변경해지권 이슈. AI로 인한 직무 변경이 근로조건의 본질적 변경에 해당하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근로기준법 제94조)이나 개별 동의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사전에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업데이트하고, 변경 범위를 노사 간 합의하는 절차를 마련해두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이다.

정신건강 리스크 관리의 법제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직무스트레스를 업무상 질병의 원인으로 인정한다. 번아웃이 조직 전체에 만연하다면, 이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산안법 제5조) 위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머서 리포트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이거다. AI 시대에 기업이 투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은 기술인가, 사람인가? 12,000명의 답은 명확하다. 둘 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다. 기술은 사람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참고 소스

  • Mercer, “Global Talent Trends 2026”, “mercer.com”
  • Mercer, “Workforce Doubles Down Under Pressure: Inside Employees’ Minds 2025-2026”, “mercer.com”
  • Mercer Newsroom, “Investors Say Companies Combining Human and AI Capabilities Gain a Competitive Advantage”, “mercer.com”
  • WorldatWork, “Mercer Forecasts 3.5% Total Salary Increase Budgets for 2026”, “worldatwork.org”
  • CIO Korea, “한국인 93%가 직장서 번아웃 경험”, “c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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