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6만 개, 0.2%가 말하지 않는 것
2024년 한국의 일자리는 2,671만 개였다. 전년보다 6만 개 늘었고, 증가율은 0.2%. 2016년 일자리행정통계를 처음 작성한 이래 최저치다. 숫자 자체보다 그 안의 구성이 문제다. 대기업 일자리 8만 개 감소, 중소기업 1만 개 감소(통계 작성 이래 최초), 20대 일자리 15만 개 감소(2년 연속), 40대 17만 개 감소. 유일하게 늘어난 연령대는 60대와 70세 이상이었다. 일자리의 총량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이 데이터가 나온 시점과 거의 같은 때,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했다. 신기술 도입이 한국의 성장·고용·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이질적 경제주체 일반균형 모형(heterogeneous agent general equilibrium model)으로 분석한 것이다. 결론은 분명했다. 장기적으로 생산과 투자는 증가하지만 고용은 감소하고, 기술 숙련도별 양극화가 발생하며, 소득·소비 불평등이 확대된다. 여기까지는 예측 가능한 결론이다. 그런데 이 모형의 핵심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전제가 모든 결론을 떠받치고 있다 — 노동자들이 시장 노동에서 자발적으로 인적자본 투자로 시간을 재배분한다는 것. 이 가정이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면, 모형이 약속하는 ‘장기 생산성 향상’은 재숙련 인프라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조건부 낙관에 불과하다.
한 줄 요약: 신기술이 고용을 줄이되 생산성은 높인다는 모형의 핵심 전제 — ‘노동자의 자발적 인적자본 재배분’ — 는 실제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0.2%
2024년 일자리 증가율 — 통계 작성 이래 최저
국가데이터처 · 2024년 일자리행정통계 (2025.12)
-8만
대기업 일자리 감소 — 중소기업도 사상 첫 감소
국가데이터처 · 2024년 일자리행정통계 (2025.12)
-15만
20대 일자리 — 2년 연속 감소
국가데이터처 · 2024년 일자리행정통계 (2025.12)
51.4세
건설 기술인력 평균 연령 — 2004년 37.5세에서 상승
한국건설산업연구원 (2025.7)
19%
저학력 성인 훈련 참여율 — 고학력은 61%
OECD · Bridging the AI Skills Gap (2025)
모형 속 노동자는 스스로 진화한다
한국은행 모형의 구조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불완전 시장, 가계의 시간 배분 선택, 인적자본 축적의 볼록 조정비용(convex adjustment costs), 기업의 고용 조정 비용을 모두 포함한 이질적 경제주체 모형을 설계했다. 모형이 그리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신기술이 도입되면 일부 직무가 자동화로 대체된다. 여기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두 갈래 선택지를 갖는다. 저숙련 직종으로 하향 이동하거나, 시장 노동 시간을 줄이고 인적자본에 투자하여 고숙련 영역으로 이동하거나.
모형이 장기 균형에서 생산과 투자의 증가를 예측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두 번째 경로에 있다. 충분한 수의 노동자가 재숙련에 성공하면, 경제 전체의 인적자본 스톡이 올라가고, 신기술과 결합한 고숙련 노동의 생산성이 기존 노동력의 단순 투입보다 높아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메커니즘의 이론적 정합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전제다.
연구진도 인정하는 대목이 있다. 기술 조정이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그리고 이 마찰이 “과도기적 고용 손실과 분배 격차를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과도기’가 얼마나 긴지, 어떤 노동자에게 특히 길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모형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질적 경제주체를 설정해 놓고도, 정작 이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 — 누가 재숙련할 수 있고 누가 할 수 없는가 — 은 모형의 파라미터 안에 갇혀 있다.
재숙련이 불가능한 51세
건설업의 현실이 이 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한국 건설 기술인력의 평균 연령은 51.4세다. 2004년 37.5세에서 20년 만에 14세가 올랐다. 20~30대 기술 인력의 비중은 64.0%에서 15.7%로 급락했고, 60세 이상은 3.5%에서 28.1%로 8배 뛰었다. 건설 현장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평균 나이가 39.4세라는 사실은, 이 산업이 이미 청년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사례 — 건설업 인력 구조 2025년 건설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약 8% 줄었다. 일자리행정통계에서 건설 경기 둔화는 건설업 자체뿐 아니라 운수·창고(-6만), 금융·보험(-6만) 등 파생 산업의 동반 감소를 불러왔다. 통계 당국은 “건설 경기 악화가 전체 일자리 증가 둔화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모형으로 돌아가 보자. 이 모형에서 건설업 노동자가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경로는 ‘시장 노동 시간을 줄이고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이다. 평균 51세, 현장 경험 중심의 숙련 체계를 가진 노동자가 디지털 기술이나 AI 관련 역량을 쌓기 위해 시간을 재배분한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경로가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훈련 비용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 접근 가능한 훈련 프로그램의 존재, 그리고 재숙련 이후 실제로 고용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수용력.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지금 한국의 건설업 노동자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20대가 사라지는 시장의 역설
건설업 고령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대 일자리가 2년 연속 줄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각도에서 모형의 전제를 흔든다. 20대는 이론적으로 인적자본 투자의 최적 시기에 있는 집단이다.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학습 능력이 높으며, 경력 전환의 유연성도 크다. 모형의 논리대로라면 20대는 신기술 시대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그룹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20대 일자리 328만 개, 전년 대비 15만 개 감소. 통계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인구 감소와 신규 채용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불편하다. 인구 감소는 노동 공급 측면이고, 신규 채용 감소는 수요 측면이다.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한다면, 20대에게 ‘인적자본 투자로 시간을 재배분하라’는 모형의 처방은 공허해진다. 투자할 시간은 있되, 투자한 결과를 회수할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40대의 상황은 더 직접적이다. 40대 일자리 17만 개 감소는 “인구 감소에 건설업 악화의 영향”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40대 노동자는 건설·제조 현장에서 숙련 기능인력으로 일하는 비중이 높다. 이들이 직장을 잃었을 때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숙련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얼마나 열려 있을까. 보건·사회복지 분야가 13만 개 늘었다고는 하지만, 건설 현장 관리자가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로 전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숙련 체계를 요구한다.
훈련의 마태효과
OECD가 2025년 발표한 Bridging the AI Skills Gap 보고서는 이 문제의 구조적 뿌리를 드러낸다. 성인 학습 참여율에서 가장 강력한 결정 요인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다.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성인의 비형식 학습 참여율은 19%, 대졸 이상은 61%. 격차가 42%포인트다. 재숙련이 가장 절실한 집단이 훈련에 가장 적게 참여하는, 일종의 마태효과(Matthew effect)가 작동하고 있다.
더 불편한 대목이 있다. OECD는 훈련 자체가 “불이익의 세대 간 전승을 재생산”한다고 지적한다. 불리한 배경의 학습자는 기계 조작이나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과정에 과대 대표된다. AI 리터러시나 디지털 역량 같은 미래 지향 훈련에는 이미 높은 숙련을 가진 노동자가 몰린다. 훈련의 양이 아니라 훈련의 질과 방향이 기존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구조인 셈이다.
데이터 — OECD 훈련 격차 제조·금융 부문 고용주의 40%가 기술 부족을 AI 도입의 주된 장벽으로 지목했다. 동시에 현재 AI 관련 훈련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는지조차 “제한된 이해” 상태라고 보고서는 인정한다. 훈련 공급의 양과 질 모두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모형이 전제하는 ‘인적자본 투자’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일지 이 데이터가 말해준다. 고숙련 노동자는 기업의 지원 아래 AI 관련 훈련을 받고, 신기술과 결합해 생산성을 높인다. 저숙련 노동자는 접근 가능한 훈련이 제한적이고, 있다 해도 기존 숙련의 연장선에 그친다. 모형이 예측하는 양극화는 기술 변화의 직접 효과가 아니라, 재숙련 시스템의 구조적 편향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생산성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은행 연구가 제시하는 핵심 발견 중 하나는 “기술 변화의 방향성이 불평등 수준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기술 진보가 고숙련 노동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저숙련을 대체하는 방향이면 저숙련의 고용과 임금이 동시에 떨어진다. 연구진은 이 분석을 통해 기술 변화의 방향이 정책적으로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도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기술 변화의 방향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보다 먼저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노동자의 분포가 중요하다. 기술이 고숙련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보하더라도, 고숙련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어 있다면 결과는 동일하다 — 소수의 고숙련 노동자에게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집중된다.
NBER이 2026년 발표한 미국-유럽 AI 도입 격차 연구는 이 점을 뒷받침한다. AI 도입률이 높은 산업에서 생산성 성장이 더 빠르게 나타났지만, 고용 변화와의 관계는 “불분명”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되 고용을 늘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AI 도입의 핵심 변수는 기업의 인사관리 관행과 AI 사용 장려 여부였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조직이 기술을 어떻게 노동자에게 연결하는가가 생산성 격차를 만들었다.
이 발견을 한국은행 모형에 대입하면, 모형의 ‘장기 생산성 향상’은 모든 기업이 적극적으로 AI 사용을 장려하고 노동자의 재숙련을 지원할 때만 실현된다. 현실에서 그런 기업은 이미 경쟁력 있는 대기업 일부에 한정된다. 2024년 대기업 일자리가 8만 개 줄어든 현실에서, 남아 있는 대기업 일자리가 고숙련·고생산성 위주로 재편되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다.
모형이 말하지 않는 시간
이 글의 핵심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은행 모형은 이론적으로 정교하고, 그 결론 — 신기술이 장기적으로 생산을 높이되 고용을 줄이고 불평등을 확대한다 — 자체는 설득력 있다. 문제는 ‘장기’라는 시간 프레임에 담긴 가정이다. 모형이 장기 균형에 도달하려면 충분한 수의 노동자가 재숙련에 성공해야 하고, 그 재숙련이 실제로 고용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노동시장의 실태는 이 가정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건설업에서 밀려나는 51세 노동자에게는 재숙련의 경제적 여유도,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도, 전환 후 수용할 시장도 없다. 20대에게는 인적자본 투자의 능력은 있되 투자 수익을 회수할 일자리가 줄고 있다. OECD 데이터가 보여주듯 훈련 시스템 자체가 이미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구조다.
이건 좀 냉정하게 말해야 할 대목이다. 모형이 예측하는 ‘과도기’는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과도기를 통과하려면 인프라가 필요하다. 재숙련 프로그램의 접근성, 훈련 중 소득을 보장하는 안전망, 재숙련 이후 실제 고용으로 연결되는 매칭 시스템. 이 인프라 없이 모형의 장기 균형을 기다리는 것은 다리를 놓지 않고 강을 건너라는 것과 같다.
조건부 낙관을 현실로 바꾸려면
한국은행 연구의 가장 큰 기여는, 신기술 도입의 효과가 기술 변화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이 발견을 뒤집어 읽으면 정책적 개입의 여지가 열린다. 기술 변화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노동자가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핵심은 모형의 ‘자발적 인적자본 재배분’을 제도적 인적자본 재배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론의 세계에서는 노동자가 합리적으로 시간을 재배분한다. 현실에서 그 재배분이 일어나려면 제도가 비용과 리스크를 흡수해야 한다. 건설업 노동자가 디지털 역량을 배우는 6개월 동안 소득이 끊기지 않아야 하고, 20대가 AI 관련 훈련을 받은 후 실제로 채용하는 기업이 있어야 하며, 훈련의 내용이 기계 조작 반복이 아니라 실질적 숙련 전환이어야 한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사내 재숙련 프로그램의 실질 접근성 감사. 훈련 기회가 이미 고숙련·고성과자에게 편중되어 있지 않은지 확인한다. OECD가 지적한 ‘훈련의 마태효과’가 자사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면, 기술 전환기에 가장 필요한 인력이 가장 먼저 이탈하는 역설이 반복된다.
② 기술 변화 시나리오별 인력 포트폴리오 점검. 자사의 핵심 직무 중 자동화 가능성이 높은 영역의 인력 구성(연령·숙련도·근속)을 분석한다. 평균 연령이 높고 전환 가능한 숙련이 제한적인 직무부터 선제적 전환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③ 채용에서 ‘인적자본 투자 가능성’의 가중치 재설정. 신규 채용 시 현재 보유 스킬뿐 아니라 학습 역량과 전환 유연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한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다음에 배울 수 있는 것’의 가치가 커진다.
#신기술도입#재숙련#인적자본#노동시장양극화#HR전략
참고 링크
-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Effects of New Technology Adoption in Korea: Implications for Growth, Employment, and Inequality” (2026)
- 한경비즈니스, “대기업 일자리 8만개·중기 1만개 줄었다···20대 일자리는 2년 연속↓” (2025)
- 매일신문, “건설현장 기술인력 평균 51.4세…’젊은 기술자 없나요’” (2025)
- OECD, “Bridging the AI Skills Gap” (2025)
- NBER, “Mind the Gap: AI Adoption in Europe and the U.S.”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