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방치된다
회의를 주재하고, 실무자의 질문에 답하고, 경영진의 지시를 번역해서 현장에 내려보내는 사람. 중간관리자다. 이들의 하루는 쉴 틈이 없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체계적 역량 개발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조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입사원에게는 온보딩이 있고, 임원에게는 리더십 코칭이 있다. 중간관리자에게는?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암묵적 기대만 남는다.
솔직히, 이건 좀 이상한 구조다. 조직 성과의 가장 큰 레버리지가 바로 이 중간 계층에 있다는 걸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투자는 위아래로만 집중되고 있으니 말이다.
한 줄 요약: 중간관리자 역량 부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이 직급에 대한 투자를 설계하지 않은 구조적 실패다.
숫자가 말하는 ‘중간의 무게’
중간관리자가 조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정량적 사실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과 리서치 센터가 반복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놓고 있다.
21배
상위 25% 관리 역량 조직의 평균 수익률 격차
McKinsey Management Program / 2026
70%
팀 몰입도 차이 중 관리자가 설명하는 비중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 2024
7.5%p
우수 성과자 승진 후 역량 부족 판정 증가율
국내 214개 기업 5년 추적 연구 / HR인사이트
상위 25% 관리 역량을 갖춘 조직이 하위 25%보다 평균 수익률이 21배 높다는 건, 전략이나 기술보다 ‘관리의 질’이 성과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HR 예산은 채용과 임원 코칭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 하나만으로도 중간관리자 투자 우선순위를 재편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본다.
피터의 원리가 한국에서 더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
로렌스 J. 피터가 1969년 제시한 ‘피터의 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까지 승진한다. 그런데 이 원리가 한국 기업에서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서양 기업에서 승진은 대체로 ‘다음 직급에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한국 기업에서 승진은 ‘이 사람이 충분히 오래 일했는가’, ‘이번에 안 시키면 나갈 사람인가’에 가깝다. 214개 국내 기업의 5년 추적 연구가 보여주는 승진 후 역량 부족 판정 7.5%p 증가는, 역량 기반이 아닌 연공 기반 승진 시스템의 직접적 결과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기업 특유의 ‘승진 = 보상’이라는 등식이 대안 경로를 차단한다. 뛰어난 영업 담당자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 ‘팀장 직함’뿐이라면, 그 사람은 영업 역량과 무관한 팀 관리를 맡게 된다. 아쉽다, 이 구조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사례 — 국내 스타트업의 2~3년차 벽초기 급성장 스타트업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 있다. 창업 2~3년 차에 초기 멤버를 팀 리더로 승진시키면서 리더십 공백이 발생한다. 코딩을 잘 하던 개발자가 갑자기 5명의 주니어를 관리해야 하고, 영업을 잘 하던 담당자가 파이프라인 전체를 설계해야 한다. 대부분 관리 역량에 대한 사전 교육 없이 “네가 가장 잘 아니까” 한마디로 직급이 바뀐다. 그 결과 해당 팀의 이직률이 평균 1.8배 높아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MZ세대가 원하는 관리자는 ‘지시자’가 아니다
중간관리자 투자를 재설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피관리자의 기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MZ세대 구성원이 조직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들이 관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업무 지시자’에서 ‘성장 촉진자’로 바뀌고 있다.
기존 세대의 관리자 상(像)은 명확했다. 목표를 하달하고, 진척을 점검하고, 결과를 평가한다. MZ세대가 원하는 관리자는 다르다. 하나는 코칭 기반의 대화다. “이번 분기 목표는 이거야”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통해 네가 어떤 역량을 키우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지는 관리자다. 다른 하나는 수평적 의사소통이다. 회의실에서 직급순으로 발언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질로 대화의 방향이 정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관리자다.
그런데 현실의 중간관리자는 이런 역할 전환을 ‘개인의 센스’에 의존해서 해내야 한다. 조직이 코칭 스킬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서 “요즘 세대를 잘 다뤄라”고 요구하는 건, 핵심이다 — 조직이 관리자에게 도구 없이 결과만 요구하는 구조적 모순이라는 것이.
역량 투자의 방향은 ‘교육’이 아니라 ‘설계’다
중간관리자 역량 강화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2박 3일 워크숍, 외부 강사 초빙, 케이스 스터디 토론. 이런 프로그램이 완전히 무의미한 건 아니지만, 근본적 한계가 있다. 교육장을 나서는 순간 일상의 관성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관리 역량 상위 25%에 속하는 조직들이 하위 조직과 다른 점은 ‘교육의 양’이 아니다. ‘역할 설계’ 자체가 다르다. 이 조직들은 중간관리자의 시간 배분을 의도적으로 설계한다. 보고서 작성과 회의 참석에 하루의 80%를 쓰는 관리자는, 코칭과 팀 개발에 쓸 시간이 물리적으로 없다. 상위 조직은 관리자의 행정 업무 부담을 시스템으로 줄이고, 확보된 시간을 사람 관리에 배정한다.
한국 맥락에서 이건 특히 중요하다. 국내 중간관리자의 평균 보고 라인 수는 글로벌 평균보다 많고, 의사결정 권한은 적다. “관리자인데 관리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인 조직이 대부분이다.
flowchart LR
A[중간관리자 하루] --> B[행정·보고 60%]
A --> C[회의 참석 20%]
A --> D[팀 코칭·개발 10%]
A --> E[전략 사고 10%]
F[상위 25% 조직] --> G[행정·보고 30%]
F --> H[회의 참석 15%]
F --> I[팀 코칭·개발 35%]
F --> J[전략 사고 20%]
승진 없는 성장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피터의 원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려면, ‘승진’이 유일한 보상 수단이 되는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 이중 경력 경로(Dual Career Ladder)는 오래된 개념이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기업은 여전히 소수다.
핵심은 ‘전문가 트랙’에도 관리자 트랙과 동등한 보상과 존중을 부여하는 것이다. 직함이 ‘수석연구원’인데 실질적 권한과 급여가 ‘팀장’보다 낮다면, 아무도 전문가 트랙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다.
또한 ‘Two-Way Door’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관리자 역할에 배치됐다가 적합하지 않으면 전문가 트랙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승진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되는 순간, 조직은 부적합한 관리자를 교체할 유연성을 잃는다. “이 사람 팀장 내렸다”가 곧 “이 사람 찍혔다”로 읽히는 문화에서는, 조용히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리자 투자를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면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짚은 핵심은 하나다. 중간관리자 역량 문제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개인에게 역량을 요구하기 전에, 조직이 먼저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관리자의 시간 중 실제 ‘사람 관리’에 쓰이는 비중이 얼마인가? 승진 기준에 ‘관리 역량’이 정량적으로 반영되어 있는가? 관리자 역할이 적합하지 않을 때 되돌아올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아니요”가 하나라도 있다면, 리더십 교육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게 먼저다. 21배라는 수익률 격차는 관리 역량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사업 성패를 가르는 것’임을 보여준다. 중간관리자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조직이 할 수 있는 가장 레버리지 높은 의사결정이다.
💡 실무 시사점: 중간관리자 역량 강화의 출발점은 교육이 아니라 역할 재설계다. 행정 부담 경감 → 코칭 시간 확보 → 역량 기반 승진 기준 도입 → 이중 경력 경로 실행 순서로 접근해야 교육의 효과도 살아난다.
#중간관리자#리더십투자#피터의원리#역할재설계#이중경력경로#MZ세대관리
참고 링크
- McKinsey, “Activating middle managers through capability building” (2026)
- HR인사이트, “직급이 높을수록 역량이 떨어진다는 통념 — 피터의 원리와 HR 현실” (2026)
- HR인사이트, “MZ세대 리더십 개발, 무엇이 다른가”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