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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인력 수요는 연 11.6% 폭증하는데, HR은 아직 출발선에 있다

녹색 인력 수요는 연 11.6%씩 폭증하는데, 공급 증가율은 5.6%에 그친다. 이 격차가 숫자에 머물던 시절은 지났다. 탄소중립 로드맵이 법적 구속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에너지·제조·건설 현장의 HR 담당자들은 “내년까지 탄소감축 인력을 어디서 확보하느냐”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솔직히, 이건 채용 문제가 아니라 조직 설계 문제다.

ILO가 제시한 전망은 꽤 구체적이다. 적절한 정책이 뒷받침되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400만 개의 녹색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같은 시나리오에서 약 8,00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근본적으로 바뀐다. 순증 효과를 논하기 전에, 8,000만 명의 전환을 누가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한 줄 요약: 녹색 전환은 채용이 아니라 ‘스킬 재배선’의 문제이며, HR이 이 전환의 설계자가 되지 않으면 조직은 인력 공백과 규제 리스크를 동시에 맞는다.

녹색 스킬 격차, 생각보다 깊다

OECD가 2025년 말 발표한 Employment and Skills Policies for the Green Transition 보고서는 불편한 사실 하나를 짚는다. 현재 OECD 국가 평균, 한 직무에서 녹색 관련 스킬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5%다. 반면 환경 컨설턴트 같은 명확한 녹색 직종에서는 22%까지 올라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14배 차이가 ‘녹색 전환’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본다.

문제는 단순히 ‘녹색 직종’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다. 기존 직무 안에서 녹색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생산관리자가 탄소발자국 측정을 이해하고, 구매 담당자가 공급망 ESG 평가를 수행하고, 시설관리자가 에너지효율 인증 기준을 숙지해야 한다. 직무 타이틀은 그대로인데 내용물이 바뀌는 것 — OECD는 이것을 ‘직무 녹색화(greening of jobs)’라 부른다.

1.5%

OECD 평균 직무 내 녹색 스킬 비중

OECD Skills Outlook / 2025

2,400만 개

2030년까지 글로벌 녹색 일자리 순창출 전망

ILO Green Jobs Initiative / 2024

11.6%

녹색 인력 수요 연간 증가율 (공급 5.6%)

LinkedIn Green Skills Report / 2024

탄소집약 산업의 인력, 왜 전환이 더 어려운가

이건 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OECD 분석에 따르면, 탄소집약 직종 종사자들은 이미 상당한 ‘전환 가능 스킬(transferable skills)’을 보유하고 있다. 용접, 설비운영, 프로젝트 관리 같은 역량은 재생에너지 설치, 건물 에너지 개보수 현장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직업훈련 참여율이 다른 직종보다 낮다. OECD 보고서는 이것을 ‘훈련 역설’이라 부른다. 전환이 가장 시급한 사람들이 전환 준비를 가장 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교대근무 환경에서 학습 시간을 빼기 어렵고, 고용주도 당장 생산 라인 가동이 우선이라 교육 투자를 미루며, 무엇보다 “내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가 동기부여가 아니라 회피 반응을 만들어낸다.

한국 상황은 더 복잡하다. 2026년부터 수소환원제철 실증이 본격화되고, 그린수소 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되면서, 전통 제조업 현장에서 “우리 팀 업무가 3년 안에 얼마나 바뀌느냐”는 질문이 현실이 되고 있다.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82개 실행 과제를 제시했지만, 현장 인력 재교육의 구체적 실행 로드맵은 아직 빈칸이 많다.

역할 기반에서 역량 기반으로 — BP의 전환 실험

에너지 대전환의 한복판에 있는 BP India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BP India CHRO 지요티 메논 박사는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 미래의 밴드(band)를 계획한다”고 말한다.

사례 — BP India의 역량 기반 전환BP India는 전통적 유전 운영 인력을 Jio-bp 합작사, 푸네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센터, 디지털·애널리틱스 부서로 재배치하는 구조적 전환을 진행 중이다. 핵심 원칙은 “인력 이동은 공석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업이 향하는 곳을 따라야 한다”는 것. 직무 타이틀이 아닌 디지털 유창성, 분석 역량, 프로젝트 딜리버리 같은 전환 가능 역량 중심으로 경력 경로를 재설계했다.

메논 박사가 강조하는 건 “인력 전략은 역할(role) 기반이 아니라 역량(capability) 기반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행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존 HR 시스템은 직무기술서(JD)와 직급 체계 위에 세워져 있다. 역량 기반으로 바꾸려면 성과평가, 보상, 승진, 교육체계를 통째로 재배선해야 한다.

솔직히,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아직 이 전환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 ESG 보고서에 “인적자원 관리” 한 줄 넣는 것과, 실제로 직무분석을 녹색 역량 기준으로 재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6개국이 보여주는 정책 처방전

OECD 보고서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벨기에(플란더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페인 6개국의 정책 사례를 비교 분석한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패턴이 있다.

가장 효과적인 접근은 직업훈련(VET) 개편과 재직자 교육 인센티브를 동시에 가동한 국가들이다. 네덜란드는 기업의 녹색 스킬 훈련 비용에 세제 혜택을 연동했고, 스페인은 탄소집약 산업 밀집 지역을 ‘공정전환 지역’으로 지정해 맞춤형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일랜드는 기후행동계획과 국가 스킬 전략을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묶어서, 산업 전환과 인력 전환의 시차(time lag)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도 ‘산업일자리전환 컨설팅’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장 침투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태양광·폐자원 부문은 제조·운영 기술 직무교육이, 수소·바이오매스 부문은 연구개발 인력 양성이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이를 개별 기업 단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젠더 격차라는 숨은 변수

녹색 전환의 고용 효과에는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 ILO와 OECD 분석 모두, 녹색 일자리 창출의 수혜가 성별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린다고 경고한다. 현재 녹색 관련 직종에서 여성 비율은 현저히 낮다. 동시에 탄소집약 직종에서는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어서, 해당 산업이 축소될 때 남성의 실직 리스크가 더 크다.

결국 양쪽 모두에서 젠더 균형이 깨진다. 녹색 일자리의 성장 과실은 여성에게 덜 돌아가고, 기존 일자리 소멸의 충격은 남성에게 집중된다. 이건 좀 불편한 진실이지만, HR이 녹색 전환 인력 계획을 세울 때 성별 분포를 처음부터 변수로 넣어야 하는 이유다.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전환은 실패한다

BP India의 메논 박사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것이다. “인력 안정은 더 이상 고용의 영속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비된 상태(preparedness)를 의미한다.” 아쉽다, 한국 기업 대부분은 아직 ‘안정 = 유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녹색 전환의 인력 설계에서 HR이 빠지면, 그 빈자리를 엔지니어링 부서나 외부 컨설턴트가 채운다. 그리고 그들이 설계한 인력 계획은 십중팔구 ‘기술 사양서’처럼 읽힌다. 현장 작업자의 경력 불안, 학습 동기, 조직 내 이동 경로에 대한 심리적 설계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McKinsey는 조직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최근 분석에서, 절반 이상의 조직이 구성원을 “권한을 가진, 경청받는 존재로 느끼게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고 밝혔다. 녹색 전환 맥락에서 이 말을 번역하면 이렇다 — “당신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당신의 역량이 새 방향으로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설계하는 것. 이건 PR이 아니라 HR의 일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전체 직무의 녹색 역량 비중을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 조직의 현재 수치가 OECD 평균 1.5%보다 높은지 낮은지, 그리고 3년 후 어디까지 올려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전환의 첫 단추는 끼워진다. 숫자가 잡히면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계획이 만들어진다.

💡 실무 시사점: 녹색 전환은 신규 채용이 아니라 기존 인력의 역량 재배선 문제다. 직무별 녹색 스킬 비중을 측정하고, 탄소집약 직군의 훈련 참여율을 추적하며, 역할 기반에서 역량 기반으로 인력 체계를 재설계하라. 이 전환에서 HR이 설계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조직은 규제 대응과 인력 공백 사이에서 표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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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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