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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두 배로 늘었다, 한국 밖에서 — AI 시대 인재·역할·임금의 3중 미스매치

박사가 두 배로 늘었다 — 한국 밖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수가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1만 8,000명으로 두 배가 됐다. 한국은행이 2,700명을 직접 설문한 결과, 국내 근무 이공계 인력의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고, 20~30대로 좁히면 그 수치는 70%까지 치솟는다. 상위 5개 대학 출신이 순유출의 47.5%를 차지한다는 건, 가장 경쟁력 있는 인재부터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이 흐름의 핵심에 AI와 반도체가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 AI는 전 세계 직업의 4분의 1을 재편하고 있고, 그 재편에 필요한 역할을 한국 기업은 설계하지도, 보상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 글의 주장은 하나다 — 인재 유출, 역할 부재, 임금체계 경직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함정이며, 어느 하나만 손대면 나머지가 무너진다.

1.8만 명

재미 한국인 이공계 박사 (2021)

한국은행 이슈노트 (2025)

2.95

30년 근속 대비 1년 미만 임금 배율

국회미래연구원 · KDI (2025)

25%

생성형 AI 영향권 직업 비율

ILO · ESCWA (2026)

70%

20~30대 이공계 해외이직 고려율

한국은행 설문 (2025)

유출의 결정요인은 돈이 아니다 — 돈만은

해외 이직을 결심하게 만드는 요인을 하나만 꼽으라면 대부분 ‘연봉’을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절반만 맞다. 한국은행 설문에서 소득 만족도가 올라가면 해외이직 가능성은 4.0%p 줄어든다. 그런데 고용안정성 만족도는 5.4%p, 승진기회 만족도는 3.6%p를 줄인다. 석사급은 승진기회와 연구환경이, 박사급은 고용안정성과 자녀교육이 결정적이다. 돈을 더 준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임금체계 문제가 끼어든다. 한국의 30년 근속자 임금은 1년 미만의 2.95배다. 일본(2.27배), 독일(1.8배)과 비교하면 OECD 최상위권이다. 솔직히,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 연공급 체계에서는 신입 연구자에게 갈 재원이 고참의 호봉 상승에 묶여 있다. 보상체계를 혁신하라는 한국은행의 제안과, 직무급으로 전환하라는 국회미래연구원의 권고가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그런데 공공기관 직무급 도입 기관이 2023년 108개에서 2024년 129개로 느는 동안, 민간 대기업은 여전히 관망 중이다. AI 인재에게 시장가치 기반 보상을 약속할 수 있는 구조가 없으니, 그들은 실리콘밸리의 연봉 테이블 앞에서 주저할 이유가 없다.

AI가 바꾸는 건 일자리 ‘수’가 아니다

ILO와 ESCWA의 공동 보고서는 생성형 AI가 아랍 지역 직업의 25%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런데 이 25%를 ‘사라질 일자리’로 읽으면 오독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세 가지 2035 시나리오를 보면, 가장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대규모 직무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차이는 그 전환을 조직이 설계하느냐, 방치하느냐에 있다.

ILO 2035 시나리오 시나리오 1(적극 투자): AI가 지역 GDP의 25%에 기여하되 대규모 노동시장 구조조정 수반. 시나리오 2(불평등 심화): AI 기여 $375B이지만 중·하위 숙련 노동자의 장기 이탈. 시나리오 3(점진 통합): 연간 20~34% 성장하며 관광·물류·디지털 서비스에 기회 확대.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공통되는 건 교육-노동시장 미스매치가 40~70%에 달한다는 진단이다. 기존 교육 체계가 AI 시대의 직무를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 수치를 한국에 대입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한국의 이공계 인력 유출은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에 필요한 역할을 국내에서 수행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혁신에는 세 개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연구팀은 대규모 혁신을 이끄는 조직에 세 가지 역할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아키텍트는 조직 내부의 사회적 환경을 재설계하고, 실험과 협업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든다. 브리저는 조직 경계에서 외부 파트너와 전혀 다른 우선순위·역량·작업 방식을 가진 집단 사이를 연결한다. 카탈리스트는 단일 조직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이해관계자를 매핑하고, 다자간 협업의 모멘텀을 유지한다.

이 프레임을 한국 상황에 겹쳐보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아키텍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고급 이공계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브리저 역할 — 가령 AI 기술팀과 HR 부서, 또는 국내 연구소와 해외 파트너를 잇는 사람 — 은 한국 기업의 인사체계에서 직무 자체가 정의되지 않았다. 카탈리스트는 더 희소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혁신 인재’를 말할 때 대부분 아키텍트만 상상하고 브리저와 카탈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게 핵심이다. 세 역할 중 하나라도 빠지면 혁신은 내부에 갇히거나 외부와 단절된다.

그리고 여기서 임금체계가 다시 등장한다. 연공급은 근속 연수라는 단일 축 위에서 작동한다. 아키텍트·브리저·카탈리스트라는 역할은 근속과 무관하다. 5년 차 엔지니어가 생태계 카탈리스트 역할을 할 수 있고, 20년 차 관리자가 아키텍트에 부적합할 수 있다. 직무급 전환이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역할 기반 조직 설계의 전제 조건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인간 참여형 AI’가 작동하려면

스탠퍼드 인간중심AI연구소(HAI)는 AI 시스템 설계의 핵심 원칙으로 Human-in-the-Loop를 제시한다. 이들의 주장은 직관적이면서 도발적이다 — AI가 완전 자율로 작동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취향·전문성을 AI 시스템 안에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진짜 설계 과제라는 것이다. “Automation is not the removal of human involvement, but the selective inclusion of human participation.”

이 원칙이 한국 기업 현실과 만나면 역설이 생긴다. Human-in-the-Loop가 작동하려면, 루프 안에 들어갈 ‘인간’이 있어야 한다. 그 인간은 AI 시스템의 출력을 평가하고, 오류를 교정하며, 맥락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여야 한다. 한국은행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바로 그런 전문가들이 가장 빠르게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오와 ICT 분야에서 순유출이 2015년 이후 확대되고 있다는 건, AI 시대의 핵심 루프에 들어갈 인력이 점점 줄고 있다는 뜻이다.

비대칭 ILO는 AI가 직업의 25%를 변환한다고 말하고, 스탠퍼드 HAI는 그 변환의 품질이 인간 참여 설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 ‘참여할 인간’ — 이공계 고급 인력 — 을 매년 수천 명씩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AI 도입 속도와 AI 인재 유출 속도가 동시에 빨라지는 나라에서 Human-in-the-Loop는 빈 루프가 될 수 있다.

HAI가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은 granularity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거나 모든 것을 수동으로 남기는 이분법 대신, 업무의 어떤 부분에 인간이 개입하고 어떤 부분을 AI에 맡길지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HBS가 말하는 ‘아키텍트’ 역할이다 — 조직 내부에서 AI와 인간의 협업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 그런데 한국 기업 인사체계에 ‘아키텍트’라는 직무 등급이 있는가? 그 역할에 대한 보상 경로가 있는가?

3중 미스매치의 구조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하나의 구조가 드러난다. 첫 번째 미스매치: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가 빠져나간다(유출). 두 번째 미스매치: AI가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이 조직 안에 정의되지 않았다(역할 부재). 세 번째 미스매치: 기존 임금체계가 새 역할을 보상하지 못한다(경직). 이 세 가지는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flowchart TD
    A[연공급 임금체계] -->|신규 역할 보상 불가| B[아키텍트·브리저·카탈리스트 부재]
    B -->|AI-인간 협업 설계 실패| C[Human-in-the-Loop 공동화]
    C -->|국내 역할 기회 축소| D[이공계 고급인력 해외 유출]
    D -->|혁신 인재풀 약화| A

공공기관 129개가 직무급을 도입했다는 숫자는 희망적이지만, 민간 대기업 — 특히 AI·반도체 분야의 핵심 기업들 — 이 움직이지 않으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ILO 보고서의 교육-노동 미스매치 40~70%라는 수치와, 한국은행의 이공계 유출 42.9% 이직 고려율이 거의 같은 크기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교육이 직무를 준비시키지 못하고, 조직이 직무를 정의하지 못하며, 임금이 직무를 보상하지 못하는 삼중의 실패가 동일한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풀거나, 하나도 못 푸는 문제

이 구조적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단계적 접근이 아니다. “먼저 임금체계를 바꾸고, 그다음 역할을 설계하고, 마지막으로 인재를 유치하자”는 순서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임금체계를 바꾸려면 새 역할이 정의되어야 하고, 역할을 정의하려면 그 역할을 수행할 인재가 필요하며, 인재를 붙잡으려면 보상이 따라와야 한다. 순환이다.

한 줄 요약: 인재 유출·역할 부재·임금 경직은 별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순환 함정이며, 동시에 풀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무 차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은행은 ‘성과·시장가치 기반의 유연한 보상체계’를 제안했고, 국회미래연구원은 ‘직무급이 비용 절감이 아닌 임금의 수평적 재편’임을 강조했다. HBS의 혁신 역할 프레임은 조직 설계의 구체적 출발점을 제공하고, 스탠퍼드 HAI의 Human-in-the-Loop 원칙은 AI 도입의 방향을 보정한다. 이 네 가지를 따로 읽으면 각각의 권고에 불과하지만, 교차시키면 하나의 행동 설계가 나온다.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AI 직무 지도를 그려라. 조직 내 AI가 변환할 업무와 Human-in-the-Loop가 필요한 지점을 식별하고, 아키텍트·브리저·카탈리스트 역할을 직무기술서에 명시하라. 역할이 정의되지 않으면 채용도 보상도 불가능하다.

② 직무급 파일럿을 AI 조직부터 시작하라. 전사 전환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AI·반도체 핵심 인력에 한해 시장가치 기반 보상 트랙을 먼저 깔아라. 공공기관 129개가 먼저 움직인 건 민간의 실험 근거가 된다.

③ 유출 리스크를 분기별로 측정하라. 20~30대 이공계 인력의 해외이직 고려율 70%는 경고등이다. 소득뿐 아니라 고용안정성(5.4%p 감소 효과)과 승진기회(3.6%p)를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직무급전환 #AI인재전략 #HumanInTheLoop #이공계유출 #임금체계혁신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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